댄 플래빈의 아들이 회장을 맡고 있는 댄 플래빈 부동산(Dan Flavin Estate)이 댄 플래빈 작품의 사후(死後) 제작에 관한 입장을 바꿨다.
2007년까지는 댄이 죽기전에 제작되지 않은 작품들에 대해서는 사후 제작을 하지 않았다. 댄 부동산은 이런 작품숫자 제한은 '댄 플래빈의 작품 세계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플래빈은 3~5점의 작품을 하나의 에디션으로, 스케치나 전시 구상으로 조각을 고안한 뒤 작품이 팔릴 때까지는 실제 제작에 착수하지 않았다.
이는 불필요한 제작과 작품 보관 비용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는데, 결과적으로 1996년 플래빈이 사망할 때까지 1,000여 점의 조각이 실제 제작되지 않았다. 이는 시가로 환산하면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액수이다.
부동산이 입장을 바꿔 제한을 푼 것은 워싱턴 DC의 미국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연 회고전으로 플래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가열되었기 때문.
동시에 같은 시기에 뉴욕주에 개관하려던 플래빈 미술관이 재정 문제로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 변경이 타계한 댄 플래빈의 유언과 일치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은 상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