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그랑팔레가 코앞에 닥친 전시의 출품 예정인 주요작품 한 점을 빼놓게 됐다. 이유는 멀리 이탈리아 도리아 팜플리 가문에서 벌어진 상속자들간의 갈등 때문. 그랑 팔레는 오는 3월9일 개막하는 「자연과 이상, 로마의 풍경, 1600-1650년」전을 준비해 왔는데 전시를 대표하는 주요작의 하나인 안니발레 카라치의 <이집트에의 도피> 가 이 때문에 걸지 못하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이 그림은 크기면에서도 상당한데 높이1.23미터, 길이 2.3미터의 대작이다. 이는 화가 자신이 구도상 좀더 깊은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선택한 사이즈로 이 화폭에 새로운 풍경화 개념을 전개했다. 그리고 이는 수세기 동안 니콜라 푸셍이나 클로드 로렝같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안니발레 카라치가 1603년에 그린 이 작품은 현재 도리아 팜플리 가문의 소장이다. 그러나 팜플리가의 입양자녀인 아들 조나단과 딸 제스닌은 상속을 둘러싸고 법정 공방을 벌이는 중이다. 제스닌에게는 네 명의 자녀가 있으며 동성애자인 조나단은 두 명의 대리모를 통해 두 자녀를 두었다. 이러한 형태의 출산이 이탈리아의 법률상 인정되지 않는 것을 이용, 제스닌은 유산 분산을 막을 목적으로 조나단을 상대로 '적출부인(嫡出否認)' 소송을 낸 것이다. 그녀가 승소할 경우, 카라시를 비롯 카라바조, 라파엘로, 벨라스케스 등 도리아팜플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귀중한 고가의 미술품은 모두 자신의 자녀들이 상속받게 된다.
2년이 넘게 진행중인 법정공방의 와중에 지난 2월말 소장품은 도리아 팜필리 궁전의 밖으로 나가서는 안된다는 결정이 나왔다.
카라치의 작품이 벌써 수록, 발간된 전시도록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전시 작품을 서둘러 재배칠할 수 밖에 없는 그랑 팔레측으로서는 아쉬움과 실망을 감추지않을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