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뉴스페이퍼는 이번주 8일-10일 진행되는 크리스티의 록펠러 컬렉션 경매를 맞아, 현대미술시장에 미치는 록펠러 효과를 분석했다.
1870년, 미처 서른 살이 되기 전 존 D 록펠러John D. Rockefeller 시니어는 스탠다드 오일 사를 설립하고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십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모았다. 후손들도 상당한 유산을 미술품 등에 투자하는 요령을 보여줬다. 록펠러 家는 이른 시기에 현대 미술 시장에 진입, 그들이 미술 작품을 수집한 방식은 20세기를 관통하여 미술 시장의 드라마틱한 성장을 반영하거나 또는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아트 딜러인 조지프 듀븐의 고객이었던 존 D 록펠러 주니어는 J.P. 모건의 명과 강희제 도자 컬렉션에 180만 달러를 썼고, 그의 아내인 애비 알드리치 록펠러Abby Aldrich Rockefeller는 모던 뮤지엄 컬렉션과 아트 마켓에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남편은 현대미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애비는 1920년대에 생존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과 힘을 합쳐 이런 현대미술을 보여줄 공간을 만들어야 했고, 이것이 MoMA를 만들었다. 이 그룹은 모네, 세잔, 피카소, 브라크, 클레, 키르히너 등 동시대 작가들을 포함하는 범주를 확장하고자 노력했고 결국 성공하게 된 것이다.
애비의 취향은 그녀의 아이들, 특히 데이빗 록펠러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고, 그과 그의 아내인 페기가 1940년대에 처음 미술품 수집을 시작했을 때의 멘토가 알프레드 바Alfred Barr였다. 그는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야수파와 그 후배들에 대한 지식을 닦고 그 커플에게 평판이 좋은 딜러들을 소개시켜주었다. 그 중 한 사람이 폴 로젠버그.
1955년 로젠버그와 바는 록펠러가가 마네의 <브리오쉬>, 쇠라의 <그랑캉의 정박지>(1885)와 세잔의 <빨간 조끼를 입은 소년>(1893-95)를 총 50만 달러에 사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바는 로젠버그에게 세잔 대신 Beatty의 컬렉션 중 80점의 특이한 인상주의 화가를 고를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10년 후, 모마의 큐레이터 윌리엄 S 리버만은 피카소와 후앙 그리의 47점의 그림을 거트루드 스타인으로부터 7백만 달러에 데이빗과 그의 형인 넬슨 록펠러에게 팔도록 도왔다. 이중 피카소의 꽃바구니를 든 소녀 등 작품 일부는 모마에 기증되기도 했다.
이번 페기와 데이빗 록펠러 컬렉션 크리스티 뉴욕 경매 수익금 전액은 자선단체에 기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