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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옥션] 화승 철유喆侑가 그린 한신의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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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th 서울옥션 미술품경매
경매일시 : 2021.4.27(tue) 4:00 pm
Lot.230 석옹 철유 <회음후열전>(1907) 130.4x85.2cm
추정가 700만-1500만원

사마천의 『사기』 중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은 회음 사람 한신韓信에 대한 이야기다. 초나라 항량·항우를 섬겼다가 버림받고 한나라 유방의 수하가 되어 대장군에 이른 무인인데, 가난하고 인정받지 못하던 젊은 시절 시비를 걸어오는 시정잡배의 가랑이 밑을 태연히 기어나갔던 유명한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금의환향 후 자신에게 굴욕을 준 무뢰배를 치안담당관으로 임명해 인품과 덕망이 더욱 칭송되었다. 이밖에도 불우한 시절에 밥을 먹여준 빨래하던 아낙네에게 천금으로 은혜를 갚았다는 고사, 유방이 자신을 모반죄로 체포하자 유방을 원망하며 남겼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로도 유명하다. 


석옹 철유 <회음후열전>(1907) 130.4x85.2cm


미술품 경매에 등장한 한신의 고사 그림을 그린 이는 1900년 전후 가장 유명했던 화승 석옹石翁 철유喆侑(1851-1917)이다. 

조선시대 승려는 사회적으로 천한 신분으로 낮은 대접을 받았기에 화승에 대한 대우나 평가는 상대적으로 절하될 수 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왕실 불사가 많아진 조선 후기 이후 상궁이나 고위층 부녀자 등의 후원과 개화기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점차 입지가 강화되면서, 철유는 신문기사에 그의 그림이 소개될 정도로 유명해진다(1915년 매일신보에 '축연'과 함께 단 2인의 ‘조선 불화의 명인’으로 소개됐다.)

철유는  자화상을 남긴 유일한 화승이기도 하며 초상화를 잘 그려서 순종의 장인 윤택영의 조부 초상화 등 당시 고위직의 초상화도 꽤 제작했다고 한다.


철유 <자화상>비단에 담채 28.2x32.5cm 간송미술관


철유는 18살 때 함경남도 석왕사에서 출가했다. 석왕사에 머물던 화승 중봉 혜호에서 수업을 받고 화업의 길에 들면서부터 40여 년에 걸쳐 크게 활약했는데, 금강산 등 북한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확인되는 화업은 생각보다 적다.  영월 보현사 〈16나한도〉(1882), 선암사 〈약사여래도〉(1901), 서울 삼성암 〈산신도〉(1908) 등을 그렸으며 『근역서화징』의 기록에 ‘불화 뿐 아니라 산수 등 일반회화도 잘 그린’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십육나한도, 산신도나 달마도 등에서 그의 인물 표현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다. 


축연, 철유 <보현사 십육나한도> 중 1폭



회음후열전 하단 인물들


회음후열전 상단 인물들


출품작의 그림에는 수십명의 인물들에 모두 간략하나마 음영법이 적용되어 간결한 선묘의 인물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칼을 든 무뢰배가 한신의 등을 짓눌러 엎드리길 강요하는 한가운데의 사건을 여러 그룹의 인물들이 수군거리면서 보는 장면이다. 다양한 옷차림의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고 하단은 중국식 의복인데 상단은 조선식 옷차림에 각자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어서 특이하다. 


상단에는 회음후열전의 한신 이야기가 간략히 쓰여져 있다. 

회음의 백정 중에 한신을 모욕하는 젊은이가 사람들 앞에서 한신을 욕하며 “네놈이 죽을 자신이 있으면 나를 찌르고 죽을 자신이 없으면 내 가랑이 밑을 지나라”고 했다. 이에 한신이 몸을 구부려 가랑이 밑을 기어 지나가자, 저잣거리 사람들이 한신을 겁쟁이라며 비웃었다.

회음후 한신이 성곽 아래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빨래하던 아낙이 한신이 굶주린 것을 보고 먹을 것을 주었다. 한신이 기뻐하며 아낙에게, “제가 반드시 후하게 보답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아낙이 화를 내며, “대장부가 자기 밥을 챙기지 못해 이를 가엽게 여겨 먹을 것을 준 것일 뿐, 어찌 보답을 바라겠는가”라고 했다.

두 번째 화제내용은그림에 그려져 있지 않은데, 화제를 이후에 쓴 것인지 관지 뒤에 적혀 있다.  “광무 11년 정미 1월 일 설봉산雪峯山 석왕사釋王寺 석옹石翁” 관지로 그의 나이 57세(1907년)에 그렸다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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