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6월18일 마이아트옥션 경매 No.62 신학권 <금강내산총도>
화랑에서 그림 사는 손님이 하나둘이라면 경매 손님은 그의 열배, 백배나 된다는 게 경매회사들이 늘 하는 상투적 선전 문구다. 요컨대 손님이 많으니 물건을 팔기 쉽다는 것이다.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니어서 실제 많은 물건이 날로 경매회사로 모이는 게 요즘 미술시장의 경향이다. 그래서 원님 덕분에 나팔 부는 식으로 그림 애호가는 뜻밖의 호사를 종종 누리게 된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미공개 그림을 그것도 유리 진열장을 거치지 않고 코를 들이대고 바라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신학권 <금강내산총도> 1854년 종이에 수묵담채 60x300cm 추정가 1.5억~6억원
구한말 지방의 문인화가 신학권(申學權 1785-1866)이 그린 <금강내산총도>는 바로 그런 그림이다. 도암(陶巖)을 호로 쓴 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고령신씨의 세거지인 청원군 인근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지방 문인화가라 솜씨가 그렇겠지 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그는 젊어서부터 그림을 더할 나위 없이 좋아했다. 특히 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을 몹시 애호했다. 겸재 그림을 직접 구해 골똘히 연구한 끝에 마침내 그와 방불한 그림을 그리기에 이르렀다. <금강내산총도>은 그가 만년에 이룩한 경지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겸재 필치가 흥건할 정도로 배어있다. 또 유명 봉우리, 명승지, 사찰을 이름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적어 넣은 것도 겸재식이다. 그런데 구도는 신학권 식이라고 할 만큼 독자적이다. 겸재는 수백 점의 금강산 그림을 그렸으나 옆으로 펼쳐지는 두루마리 위에 그린 것은 딱 한 점밖에 전하지 않는다. 그것도 필치가 무르익기 이전의 것이다.
정양사 부근
신학권은 무르익은 시절의 겸재 필치를 빌려 마치 국보 <금강전도>를 옆으로 펼친 듯이 그렸다. 장안사로 슬슬 걸어 들어가 명연을 거쳐 묘길상을 감상하고 보덕굴을 지나 표훈사에 이르러서는 주변의 만폭동 등을 둘러본 뒤 정양사로 빠져나오는 이른바 내금강 유람코스가 손에 잡힐 듯이 그려져 있다.
지방 문인화가의 취미 세계와 그림 수련의 경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이 그림은 금강산 가보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 같은 시절 속에 세상일을 다 잊고 드러누워 즐길만한 그림으로 딱 좋은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추기; 신학권의 금강산 그림은 현재 이를 포함해 4점이 전하며 그중 2점은 미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