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를 잘하면 다른 것도 대개 기본 이상은 한다. 그래서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농구도 잘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겸재 정선(1676-1759)는 진경산수화로 이름을 떨쳤지만 다른 장르에서도 탁월한 솜씨를 보였다. 겸재가 그린 초충도는 초충도 전문화가가 울고 갈 정도로 아름답고 정교하다.
정선 <수쇄탕주인> 비단에 담채 19.4x16.3cm 추정가 5천만-1억5천만원
그런데 그는 본령이 산수여서 사람은 별로 그리지 않았다. 그려도 산 속에 나귀를 타고 가는 작은 인물을 그린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여자를 그린 것은 극히 찾아보기 힘들다. 중년에 아회도를 그린 가운데 시중드는 여인을 그린 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서 여인을 찾자면 시의도에 보이는 정도이다.
이 그림도 당나라 시인 이백(701-762)가 연밥 따는 여인들을 읊은 「녹수곡(綠水曲)」의 한 구절로 가지고 그림을 시의도다. 위쪽에 써있는 ‘수쇄탕주인(愁殺蕩舟人)’은 ‘가을 달빛이 은은히 비치는 호수에서 연밥을 캐려니 마치 꽃을 말을 걸어 배젓는 사람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것 같네’ 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시에는 가을 달밤이 배경이지만 겸재 그림에서 그 점은 분명치 않다. 겸재는 붓 몇 번으로 인물의 특징을 잡아내는데 능숙한데 이 작은 그림에서도 그런 솜씨가 엿보인다. 붉고 파란 옷 치장은 다른 겸재 그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표현이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