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아래의 커다란 바위에 기대 문인 한 사람이 물끄러미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다. 말할 것도 흐르는 물이다. 조선시대 문인이라면 자면서도 외우는 『논어』에는 흘러가는 물에 대한 비유가 있다. 밤낮 없이 흘러가는 물처럼 배움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그 정도로 배우기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백자청화 고사관수도 필통 높이 14cm 추정가 3억~4억원
이런 고사관수(高士觀水) 테마는 문인의 나라 조선에서는 일찍부터 그림으로 많이 그려졌다. 그렇지만 도자기에 들어온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문인 아이덴티티의 상징이랄 수 있는 고사관수도를 테마로 한 이 필통은 분원 전성기인 18세기 후반에 제작됐다. 맑은 백토의 색에 고르게 광택이 좋은 유약 그리고 안정된 형태 등이 그 시절의 솜씨를 엿보게 한다. 또 18세기 후반에는 문인사회에도 변화가 생겨나 도학적인 엄격함에서 한 발 벗어나 운치 있는 생활을 즐기려는 경향이 유행한다. 고사관수 테마가 필통에 그려진 것은 다분히 이런 시대적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위트인데 문인 애용의 필통에 고사관수도를 그리면서 물오리 떼를 그려 넣는 배짱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다. 도화서의 일급 화원에나 가능한 유머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후반 도화서에서 분원으로 출장을 와 이를 그린 화원은 과연 누구인가.
18세기 후반은 기라성같은 화원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오던 시절이라 누구인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는 분원 전성기의 필통에 탁월한 기량에 위트까지 갖춘 화원 솜씨가 더해져 시대 걸작이 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