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화조화는 18세기 들어 크게 일변했다고 할 수 있다. 변화를 가져온 첫 번째 화가는 현재 심사정(1707-1769)이다. 그가 등장해 곱고 화려한 명말 서민취향의 화조화 세계를 열어보였다. 두 번째는 천재화가 김홍도(1745-1806경)가 가져왔다.
그는 스승 강세황과 가까웠던 심사정과도 잘 았다. 그는 심사정의 그림에서 중국색, 중국물을 빼고 조선의 향토색을 다분히 전면에 내서운 화조화를 그려 박수 갈채를 받았다. 물론 대유행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김득신은 김홍도 서클에 있었던 대표급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김홍도가 절친했던 선배 김응환의 조카이다.
김득신 <화조도> 종이에 담채 21.6x26.4cm 추정가 2,000만~4,000만원
바탕색이 바래 처음 그렸을 때의 선연한 모습은 사라졌지만 잎 떨어진 나목에 봄이 찾아온 정경을 새와 함께 그렸다. 굽이굽이 휘감긴 고목줄기와 엉성한 가지는 김홍도의 십팔번이다. 그림에 적힌 시구는 새봄을 알리는 내용 그대로이다.
幽禽日來非有約 산새는 기약 없이 날마다 찾아오고
野花無種自生香 들꽃은 심지 않아도 절로 향기를 피우네
흔히 이 시는 김홍도 자작(自作)으로 알려져 있지만 북송의 조맹부 시이다. 김홍도가 한가할 때 써놓은 묵서첩(墨書帖)에 이 내용이 적혀있어 오해가 생겼다. 시의 앞부분은 古墨輕磨滿几香 硏池新浴照人光(오래된 먹을 가니 책상 가득 향기롭고 벼루에 물 담기니 사람 얼굴이 비치네)이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