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중인들의 고상한 모임을 사실적으로 볼만하게 그린 풍속화가 경매에 나왔다. 시회나 수연(壽宴)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운치 있는 모임을 그린 그림을 흔히 아집도(雅集圖)라고 한다. 이 그림 역시 계통으로는 그 계통이다.
새로 소개된 아집도 2점은 호조에서 경리업무 등을 맡았던 중인출신의 문화인 마성린(1727-1798)이 남긴 서첩속에 들어있다. 마성린은 시를 잘 지었을 뿐 아니라 그림에도 관심이 많았다. 당대의 여러 화가들과도 가깝게 지냈는데 그 중에는 유명 화가였던 김홍도(1745-1806무렵)도 있었다.
실제로 김홍도는 1778년에 그를 위해 부채그림 신선도를 그려준 적이 있다. 또 한 해 앞서는 김홍도가 주위 화가들과 함께 주문받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그가 나타나 화제(畵題)를 적어주기도 했다.
마성린 서첩의 제목은 <풍화설월청유지첩(風花雪月淸遊之帖)>이다. 서첩에는 1750년 봄부터 1778년 가을과 겨울 그리고 이듬해인 1779년까지 꽃 피고 바람 불고 눈 내리는 가운데 열린 네 번의 모임에 대한 글이 들어있다.
윤도행 <시한재청유즉경도>(풍화설월청유지첩 중 1) 지본담채 33.5x49.8cm (서첩전체) 별도문의
네 번의 모임 중에 1778년 가을, 노란 국화가 핀 달밤에 김순간(미상)의 시한재(時閒齋)에서 열린 모임과, 1779년 봄에 여러 사람이 오씨 집의 복사꽃 핀 정원을 찾아 모임에 그림이 끼어있다.
<신한재청유즉경도>는 김순간 집의 대청이 무대이다. 마당에는 호박 시렁과 활짝 핀 국화 화분이 보이는데 대청에서는 거문고와 가곡의 명인을 불러 감상하는 모임이 열리고 있다. 그림은 이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담채를 써서 맑게 그렸다.
또 다른 그림 <오씨화원청회도>는 화사한 복사꽃 만발한 후원의 모임을 그린 것이다. 복숭아 나뭇가지에는 큰 술병이 매달려 있고 널찍하게 마련된 자리 위에서는 수담(手談)이 한창이다.
윤도행 <오씨화원청회도>(풍화설월청유지첩 중 2) 지본담채 33.5x49.8cm (서첩전체)별도문의
이 두 그림은 한눈에 착각할 정도로 김홍도 필치가 물씬 하다. 그런데 그린 사람은 숙관(叔貫)이라는 호(또는 자)를 쓰는 화원 윤도행(尹道行)이다. 그는 국립문화재연구소 간행의 ≪한국역대서화가사전≫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미지의 화원이다.
1778년과 1779년이라면 김홍도의 나이 34, 35살 때이다. 김홍도는 10대 후반에 이미 도화서에 들어갔다. 따라서 이 무렵은 이미 필력이 무르익은 때였다. 기록을 보면 많은 주문을 쇄도하고 있었다. 윤도행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화풍만 가지고 말한다면 김홍도에게는 이미 30대 중반부터 그의 필치를 보고 따라 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18세기 후반 풍속화의 경향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는 그림이다.
마성린은 이 서첩을 복수로 만든 듯 일본 도쿄의 세카이도(靜嘉堂)문고에 같은 것이 하나 소장돼 있다고 전한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