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어디에든 기복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이든 일이든 마찬가지이다. 소년기 같은 성장기가 있으면 장년의 성숙기가 있고 또 그를 지나면 쇠락이 기다라니는 노년기가 있기 마련이다.
조선후기 궁궐과 관청의 도자기 수요를 도맡았던 사옹원 산하의 경기도광주 자기제조소, 분원(分院)도 그렇다. 이 포도문 접시는 분원이 자리잡은 뒤 고도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가운데 소속 도공들의 솜씨도 잘 무르익은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백자청화 포도문 팔각접시 지름 18.2 cm 추정가 3500만-5000만원
도자기에 각을 내는 것은 간단한 일은 아니다. 흙과 불, 손의 솜씨가 맞아 들어가야 한다. 여기에 탁월한 솜씨의 화수(畵手)를 불러 멋들어진 포도문양을 그렸다. 포도가 자손번창을 뜻한다고 하지만 그것만 보는 것은 하수의 법이다. 근사한 포도 넝쿨을 그림처럼 즐길 수 있는 형이상의 감상법도 있다.
붓을 멈춰 청화 안료가 고이는 것을 마치 화선지 위의 선염(渲染) 기교를 부리듯 했다. 거기에 더해 구연부에 살짝 변형시킨 감꼭지 문양(柿蒂文)을 그려 구성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마감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