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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옥션] 단색화 이후의 미술 시장에 대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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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옥션 제139회 2016년3월16일 경매
지금의 미술계는 ‘모노크롬 회화가 대세’라는 말이 아직까지 유효한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시기이다. 한 두 해 전부터 근원지를 알 수 없이 몰려 온 모노크롬(monochrome) 회화의 열풍은 그 동안 한국 미술계가 추구해온 가치를 한 순간에 뒤엎고, 한국 현대 미술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한두 거대 경매 회사의 집요한 강요에 의한 경매 분위기도 있었지만, 그 것도 수요자들이 호응하지 않으면 그만일 일이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 때 ‘벽지 그림’, ‘칠판 그림’ 등으로 불릴 만큼 이해하기 어려워 애호가 층을 쌓지 못하던 모노크롬 회화는 ‘단색화’라는 이름으로 대체되며 미술 시장의 블루칩으로 안착하며 단기간에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였다. 
단색화의 미술계 점유는 마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가 단기간에 천 년 이상에 걸쳐 쌓아온 바둑의 수를 학습하여 인간계 최고수인 이세돌 9단을 맞서는 놀라움을 보인 것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최근 단색화는 오랜 세월 한국인의 마음을 장식해온 근대미술과 구상을 기본으로 한 그림들을 대체하여 미술문화의 중심에 서는 당당함을 보였다. 때로는 폭력적으로 느껴질 만큼 단색화는 자신의 이름처럼 한국 미술계를 단색으로 덮어 버리는 충격을 주어 미술계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였다. 
3월에 열리는 서울옥션의 작품 구성은 단색화 이후의 미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가득한 모습이다. 단색화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면이 있지만 작품 간의 변별이 어렵고 작가의 손맛을 느끼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 그러기에 관심사가 다양한 미술 애호가들의 눈을 지속적으로 만족시키기는 어려운 장르였다. 이를 반영하듯 얼마 전부터 단색화 시장에 피로도가 가득한 모습이 여러 군데서 감지되기도 하였다. 여러 미술계 인사들은 단색화 열풍이 사라질 때를 대비하여 이를 대신할 미술이 무엇인가를 예측하는 등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승조 <무제>                           권영우 <무제>


그동안 ‘단색화 열풍’은 이우환을 필두로 정상화, 박서보, 하종현, 정창섭 등 한국 앵포르멜 미술 운동을 이끌었던 초기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은 새로운 세상의 문화운동을 주도할 참신한 얼굴은 아니었으며, 작품 또한 이미 많은 선진적인 애호가들에 의해 평가되어온 것들이었다. 외연의 폭이 좁다는 것을 인식한 미술계는 권영우, 이승조, 김태호 등 그동안 소외되어 온 작가 군을 주류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뒤따랐다. 그러나 예민한 평자들은 단색화가 새로운 미술계의 중심축으로 등장하였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수요자들이 향유할 지적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의문시하였다. 더구나 ‘이우환 사태’ 등으로 단색화의 미술품으로서의 고유성이 의심을 받으며 열풍에 타격을 입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일부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바람’은 곧 꺼질 것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새로이 대두된 것이 민중미술이었다. 민중미술은 단색화나 개념미술을 잇는 1980년대의 한국미술의 상징적인 갈래였으며, 암울한 유신시대를 돌파하려한 새로운 움직임이기도 하였다. 현실에 대한 인식을 구현하려한 민중미술은 리얼리즘에 기초를 둔 구상적인 요소가 강한 미술이었지만, 기존 미술계나 현실 정치세계에 대해 강력한 힘을 구사한 매우 모던한 것이기도 하였다. 이들의 작품은 현실 인식이 강한 탓에 그동안 좌파 미술의 대표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미술계의 중심에 서지 못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젊음을 보냈던 사람들이 세상의 경제를 움직이는 중심이 된 지금 이들의 마음을 채워 줄 새로운 미술의 총아로 등장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좌파미술이라고 많은 이들이 불편해 하던 민중미술이 어느새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대두된 미술경매시장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모습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오윤 <검은 새>                                    신학철 <고개길>


현재 미술시장에서 민중미술을 주도하는 작가는 단연 오윤과 신학철이다. 오윤은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인식되던 목판화를 현실을 바탕으로 한 감성적인 예술 장르로 승화시킨 공이 크다. 그의 작품은 현실의 한 단면을 나무판과 칼 하나로 이루어낸 단순한 도상이지만, 검은 색의 단순한 색감과 감각적인 주제의 몰입은 현대적인 느낌까지 주는 감동이 있다. 또한 신학철의 그림은 한국인의 삶을 역사와 결부시켜 그린 것으로 역사화라 할만하다. 그의 그림에는 잔재주가 없다. 생활하는 인간의 모습이나 역사 속의 인간들의 모습을 진지하게 그려내는데 장점이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에서는 역사의 장엄함, 인간 삶의 고귀함이 느껴진다. 
오윤과 신학철 외에 ‘현실과 발언’의 동인으로 활동했던 임옥상, 김정헌, 손장섭, 민정기 등의 작품이 관심을 받고 있으며, 농민의 삶을 그린 이종구, 사북 탄광 주변을 끊임없이 그린 황재형, 제도 속에서 피폐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안창홍, 제주도의 풍경을 그린 강요배 등이 새로운 미술시장의 주류로 부각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학습이나 그동안의 작업량 면에서 충분히 새로운 미술계의 주류로서 대접할 만하다. 그러나 그동안 이데올로기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이들의 작업이 철저한 자본주의 위에 삶을 구축한 현대 경제의 주류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박수근 <아이 업은 소녀>                               천경자 <여인>


또 하나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미술 갈래는 역시 근대미술이다. 일천한 근현대 미술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근대미술은 ‘영원한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오지호, 이인성,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권진규, 천경자 등 그동안 우리 미술시장을 이끌어 왔던 근대 미술가들의 가치는 언제나 유효한 가치를 가지는 ‘고전’이다. 어느 나라이든 고전이 대접을 받지 못하는 나라는 ‘문화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그동안 20여 년을 바라보는 미술 경매시장을 이끌어 왔던 이들 작가 군은 미술시장의 확장과 함께 많은 가치 상승을 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색화의 열풍과 함께 관심에서 멀어져 가는 듯한 근대미술에 대한 관심은 좌시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런 면에서 이 번 경매에 등장한 박수근, 천경자 등의 그림은 그 수준이나 가치 면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작품이다. 이 밖에 김환기, 박고석, 양달석, 도상봉 등의 그림 또한 더 많은 관심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탄생 백주년을 맞은 최영림의 작품도 좀 더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선 <산수도>                                      심사정 <고사관폭도>

 
마지막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품목이 고서화이다. 물론 조선시대 이전의 미술품이 워낙 빈약한 실정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미술시장에서 고미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적다. 물론 정선이나 김홍도, 심사정, 김정희, 정약용 등의 작품이 인기가 있다하나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과 비교할 때는 초라한 바가 있다. 정선이나 김홍도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특별한 것이 아니면 억대를 호가하기 어렵고, 서예도 김정희나 정약용의 글씨를 제외하면 그리 값이 비싸지 않다. 윤순이나 이광사와 같은 당대 명필의 글씨가 몇 백만 원도 채 가지 않는 것은 우리 문화재가 가지는 가치의 초라한 현실이다. 
갈수록 보기 어려운 고서화를 세상에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도 필요하지만 가격이 높아져야 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이다. 가격이 높지 않으니 미술시장에서도 고서화를 외면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구하기 어려운 고서화를 취급하는 것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대 미술을 취급하는 것이 세상사는 지름길이라는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는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기 어렵다. 박물관이나 좋은 수장가들이 좋은 고서화에 높은 가치 평가를 할 때에 좋은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기를 기대해본다.    

황정수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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