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연적이라도 고려 때와 조선 연적은 사용 계층이 전혀 달랐다. 조선에서는 사랑방 선비들이 사용했다면 고려는 왕족, 귀족들이었다. 따라서 고려청자 연적은 화려하고 갖은 기교가 구사돼있다. 그리고 수는 적지만 걸작이 매우 많다.
<청자상감원숭이형 연적> 높이 6cm 추정가 3억~5억원
입을 반쯤 벌린 원숭이가 제 몸집만한 잉어 두 마리를 부둥켜안고 있는 형상이다. 잉어의 아가미, 지느러미, 원숭이의 눈썹은 살짝 금을 그어 음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원숭이 눈동자와 잉어눈은 당시 금보다 비쌌다는 산화동, 일명 진채(辰彩)를 썼다. 그리고 백토로 원숭이의 손톱과 발톱을 살짝 찍어 백퇴화(白堆花) 기법도 구사했다. 원숭이 형체를 연적이든 필세 등 문방구에 쓴 사례는 현재까지 국립중앙박물관과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품 2건 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