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 이응노(1904-1989)는 학화(學畵) 과정은 세 단계로 나뉜다. 구한말 서화가인 송태회(宋泰會)와 김규진(金圭鎭)에게 사사한 것이 첫 번째이고 조금 나이 들어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타(川端) 미술학원과 혼고(本鄕)회화연구소 등지에서 근대와 접목된 새로운 동양화와 서양화를 익힌 것이 두 번째이다. 세 번째는 체계적인 학습은 아니지만 1958년에 프랑스로 건너가 2차 대전 이후 새롭게 전개중인 현대적 조형감각을 체험한 것을 꼽을 수 있다.
No. 304 이응노 <은진미륵> 종이에 수묵담채 27.5x20.3cm 추정가 75만-120만원
프랑스 이후 그는 문자추상이란 독자적인 세계로 넘어갔으나 그 바탕에는 도불이전 수학한 조선회화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숙성 과정이 깔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은진미륵은 그의 고향 홍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곳에 있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실제의 돌부처와는 달리 먹과 선 그리고 몇몇 색으로 당시로서는 신감각의 조형 시각으로 미륵을 재창조한 것이다. 고암 본래의 선 맛과 먹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