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18세기는 사회, 문화, 예술이 고르게 발전해 그 양상을 가리키는 말로 여러 수식어가 동원된다. 그 중 하나로 ‘여행의 세기’라는 말도 가능하다. 이때가 되면 조선 사람들도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백두산, 지리산, 금강산을 두루 다녔던 화가 최북은 일본에도 관심이 미쳐 통신사 일행에 사비로 동행했을 정도이다. 본토와는 다른 자연환경과 생활풍습을 지닌 제주도에 관한 관심 역시 18세기에 비롯된 일이다.
작자미상 <제주실경도> 중 제주목도성도 각 57x36.5cm 추정가 3억5,000만~5억6,000만원
12폭으로 된 이 그림은 약간의 지도적 기법을 곁들여 제주성, 화북진, 명월진, 조천관, 별방진 , 서귀진 등을 도내 주요 지명과 취병담, 백록담, 성산, 천제연폭포, 산방굴사, 한라산 영곡 등의 명승지를 그렸다. 군데군데 비사실적 묘사로 인해 민화로 분류되면서 1975년 일본의 고단샤(講談社)에서 펴낸 『이조민화(李朝民畵)』를 통해 처음 그 존재가 알려졌다. 실물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가운데 백록담 풍경은 보물 652-2로 지정된 <탐라순력도>에도 보이지 않는 내용이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