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황은 당대에 알아주는 중국 통(通)이었다. 자신이 중국 땅을 직접 밟아 중국을 실견한 것은 만년인 72살 때(1784년)였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중국에서 들어온 서적, 자료를 통해 중국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유경종의 1762년 기록을 보면 그가 안산 원당사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던 중국화첩을 보았는데 ‘팔대산인의 그림이 들어 있고 볼만했다’는 내용이 있다. 팔대산인은 명말청초의 유민(遺民)화가로 소폭 화조화에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강세황 <화조도> 지본담채 24.4x60.0cm 추정가 1,500만~5,000만원
특이하게 옆으로 길게 누운 가지 위에 앉아있는 팔팔조(叭叭鳥)를 그린 그림이다. 팔팔조는 중국그림에는 일찍부터 보이지만 조선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새다. 가지를 움켜쥔 발톱과 부리, 눈 표현 등은 십죽재화보 등의 수련을 통해 쌓은 기량이 엿보인다. 화제는 ‘壬午臘臨八大山人昆年筆(임오납 임팔대산인 곤년필)’이다. 임오년으로 보면 1762년 기록과 일치한다. 도장은 이제까지와는 낯선 것들로 ‘殷月山人(은월산인)’ ‘心遠意自偏(심원의자편)’ ‘願讀盡世間好書 願看盡世間好山水(원독진세간호서 원간진세호산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