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중반 산수화의 명수는 단연 심사정(1707-1769)이었다. 그는 평생 북한산에도 올라가보지 않았다고 했지만 머릿속에는 크고 작은 산이 가득했다. 이처럼 냇물이 흐르는 개울가의 집 역시 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No.120 심사정 <남양초려> 지본담채 33.5x60cm 예상가 4,500만-1억원
남양초려(南陽草廬)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제갈량이다. 그는 유비의 초빙을 받기 전까지 호북성 양양 외곽에 있는 남양초려, 즉 남향으로 지어진 작은 초막에서 살며 몸소 농사를 지었다. 개울의 홍교도 이를 그린 것임을 뒷받침해준다고 볼 수 있다. 볼거리는 필치이다. 먹을 풀어놓은 산에 황색 계통의 담채의 묘사는 현재가 자주 구사하는 색 배치이다. 집 뒤에 보이는 부벽준도 현재만의 필치이다. 이런 용묵과 용필의 적절한 배합과 조화가 바로 그의 명수다운 솜씨의 묘처이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