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화를 보는 맛에는 시간 여행과 같은 즐거움이 있다. 제아무리 당대를 묘사한 풍속화라도 시간과 함께 과거의 것이 된다. 그리고 그림 속 풍경은 지나가버린 그 과거의 아련한 회상을 불러일으킨다. 운보는 탁월한 필력의 소유자였다. 말하자면 한번 보면 못 그리는 것이 없는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다. 그는 단원과 혜원의 풍속화를 여러 번 방(仿)한 적이 있는데 이 그림도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라 할 만한다.
김기창 <김장> 1970년대 50.5x56.5cm 추정가 2,500만~3,500만원
좁은 화면 속에 다수의 인물을 배치하고 상황을 부여하는 일은 소위 문인계 화가들에게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이 그림에는 겨울을 앞두고 마당의 나뭇잎이 누렇게 변해 떨어질 무렵 부산하게 김장을 준비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팔을 걷어붙이고 김칫속을 비벼 넣고 또 무김치를 만드는 모습 그리고 마당 한쪽에서 배추를 씻고 다듬는 손길 등이 적잖이 현장을 지켜봐온 경험에서 나온 듯하다. 아니 김장날 부산한 중에 어느 한 켠에 화폭을 펴놓고 직접 보면서 그렸음직한 그림이기도 하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