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후기에 들면 갑자기 그림 테마가 늘어난다. 이유는 여럿이다. 무엇보다 첫 번째가 그림 수요의 괄목하게끔 늘어난 것이다. 거기에 시대정신으로, 피상적 명분을 답습해 전통을 추종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더해진다. 사실주의 정신에 입각해 관찰과 사생을 통한 그림들이 그려지는 것이 이것이다. 또 사회가 분화되면서 전문성이 요구돼, 한 가지 테마를 반복해 명성을 얻는 이른바 전문화가도 등장하는데 19세기 후반의 나비그림의 명수 남계우는 이런 요소를 두루 갖춘 경우이다.
No.053 남계우 <화접도(花蝶圖)> 견본채색 111.5x36cm 추정가 500만~1,200만원
남계우의 나비는 단순한 사생의 결과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당시 사회의 유행하던 행복지향주의를 담고 있다. 나비는 70 먹은 늙은이를 가리키는 질(耋)과 중국발음이 같다. 따라서 장수를 뜻하다. 이렇게 보면 바위틈이 핀 부귀의 꽃, 장미와 짝이 되어 부귀장명(富貴長命)을 상징하는 게 된다. 장미 대신 모란, 국화가 그려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부귀와 안거(安居)를 뜻한다. 정교한 세필의 나비 솜씨는 말할 것도 없이 바위 벼랑에 수묵에 채색 태점(苔点)을 섞어 쓴 기법은 이색적인 新기법이라 할만하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