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를 거의 관통하며 살아간 화원출신 화가 이한철은 그동안 생애 마지막 작품은 평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평양 조선박물관에 있는 해상군선도에 적힌 1893년이란 제작연대가 그의 최후작으로 전해진 것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화조화는 그보다 한 해 앞서 그린 것이다. 그림 속에 1892년 음력10월에 81살의 나이에 그렸다는 내용이 적혀있어 그의 생애를 확증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No.281 이한철 <화조도> 병풍(6폭 한 쌍). 각 133.5x33.7cm 추정가 7,000만-1억5,000만원
괴석과 나무에 앉은 새-봉황, 쌍학, 극락조, 꿩, 기러기, 공작 등-을 정교한 필치로 그린 것이다. 궁중용 화조화를 방불케하는 재료와 기법, 솜씨가 구사돼있다. 81살 때 그린 것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어려운 필력으로 이한철 재평가의 기준이 될만한 작품이다.
참고로 마지막 폭에 적힌 이한철의 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홍상사의 선친께서 살아계실 때 일찍이 나에게 병풍을 부탁하셨지만 늘 공무와 번잡한 일에 얽매여 생각은 있었지만 겨를을 내지 못하고서로 신뢰하는 정을 저버린 듯하였다. 어찌 고별 이십년 뒤에 상사의 요청이 있을 줄 짐작이나 했겠는가. 늙고찌듬을 살피지 않고 영모12폭을 드리니 한갓 옛적의 약속을 다행히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세상일 헤아리기의 어려움이 이와같은 것인가 하노라. 광서 흑룡(1892년) 음력10월 상순에 81살의 늙이 희원이 강설당에서 그리다.
洪上舍先丈在時 嘗囑余爲屛障之本 而每縈公冗有意未遑 似負相孚之情矣. 豈料永別二十餘年後 有上舍之要 不顧老朽 寫彩領十二幅以贈 非徒幸踐舊日之約 世事難測 乃如是也哉. 光緖 黑龍之陽月上澣 八十一叟 希圓 寫於絳雪堂.
홍상사선장재시 상촉여위병장지본 이매영공용 유의미황 사부상부지정의. 기료영별이십여년후 유상사지요 불고노후 사채영십이폭이증 비도행천구이리지약 세사퇴측 내여시야재. 광서흑룡지양월상한 팔십일수 희원 사어강설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