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高羲東 1886-1965)이 그린 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1864-1953) 그림이다. 고희동은 일본 유학에서 서양화를 배웠으나 귀국 후에는 서양화를 버리고 다시 동양화로 돌아왔다. 그리고 근대적 미술 단체인 서화협회를 세우며 주도적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원로들과 두루 교류했다. 위창과의 교류는 이 무렵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No.245 고희동 <모춘> 지본담채 23.5x26.5cm 예상가 200만~400만원
그림 속의 위창은 85세 때의 모습이다. 이 무렵 위창은 ‘술자모춘(戌子暮春)’이란 시를 지었는데 춘곡이 그 시의 뜻을 가지고 그린 그림이다. 시는 구석지고 초라한 집에 병들어 있으나 봄이 이미 찾아와 향기를 낸다는 뜻이다. 위창 댁은 지금 전하는 바에 따르면 돈의동 작은 골목길 안에 있었다고 한다.
반면 춘곡 집은 창덕궁곁 원서동에 있어서 두 집 사이는 그리 멀지 않았다. 따라서 그림은 춘곡이 자주 드나들면서 보아온 만년 어느 한 때의 위창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정자관을 쓴 위창은 두상이 크고 이마가 넓어 생전의 사진 모습 그대로 인데 시에서 읊은 데로 병을 앓아 수척해진 듯 양볼에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다.
그림 그 자체보다 만년의 위창 모습을 말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