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분원백자의 백미중 하나는 문방구라 할 수 있다. 검약, 절제를 모토로 삼았던 조선시대 문인들도 이시대가 되면 약간의 사치로 문방구를 즐겼다. 이때 단정하면서 격조 높은 문방구들이 많이 제작됐다. 이 연적과 필세도 그와 같은 경향 속에서 제작된 것이다.
No.261 백자 청화죽문 필세(白磁靑畵竹文筆洗, a) 19세기 7x2.5(h)cm
백자 청화죽문시명 연적(白磁靑畵竹文詩銘硯滴, b) 19세기 9.5x4.5(h)cm 추정가 2,000만~3,000만원
분원 백자는 시대마다 운반돼온 흙이 달라 시대별 차이가 있다. 그 중에서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에 제작된 것을 가장 뛰어난 것으로 친다. 당시 사용된 백토는 흙의 발색도 좋을 뿐 아니라 점성도 뛰어나 상대적으로 얇은 기벽의 백자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연적과 필세는 당시를 대표하는 문방구라 할 만하다. 운치가 있는 청화 대나무와 괴석 역시 백토의 수준만큼 솜씨 있는 화가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청화 색과 백자 톤이 서로 일치해 아마도 같은 가마에서 동시에 구워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