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이 한국회화사에 우뚝한 것은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것을 창안해낸데 있다. 금강산을 대상으로 진짜 경치, 즉 진경을 그린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림하면 중국의 유명화가가 그려서 유명해진 그림 스타일을 자기식으로 번안하는 것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겸재를 금강산을 대상으로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고 또 이제까지 없던 새, 그리는 양식을 확립한 것이다. 탁자 위의 그릇으로 치자면 위치 정도를 바꾼 것이 아니라 그 그릇을 뒤집어 놓았다고 할 만한 일이다.
No.114 정선 <통천문암> 견본수묵 24.7x18.8cm 별도문의
강원도 통천에 있는 문암을 그림 소재로 한 것 역시 겸재가 처음이다. 문암은 바닷가 절벽길로 유명한 옹천에서 30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두 개의 바윗돌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그 사이길로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문과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곳이다. 겸재 그림은 두 바위 사이만 그린 게 아니라 문을 드나들 듯 지나가는 사람을 그려 현장감을 더했다. 작은 그림 속의 세필 인물이 더욱 시선을 끄는 수작이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