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청나라 비학파(碑學派)의 창시자로 불리는 등석여(鄧石如 1743-1805) 탄생 270주년 되는 해다. 당시까지 첩학(帖學) 중심이었던 서예 연구와 수련은 등의 등장과 함께 비(碑)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쪽으로 크게 방향이 틀어지게 된다.
추사 글씨도 청대 새롭게 등장한 비학파의 영향을 받으면서 일가를 이룬 것이다. 따라서 추사 글씨에서 골기의 바탕은 예서이고 그 뿌리는 북위시대 석비 글씨와 한대 청동기 명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No.58 김정희 <임경명(臨鏡銘)> 예서, 18.1x160.2cm 추저가 3,000만~6,000만원
이 예서 <임경명>은 중년 이후 한나라 예서에 전념하던 시절의 글씨이다. 추사가 직접 원수 5년에 제작된 청동 거울(銅鏡)을 입수했는지 혹은 중국 지인을 통해 그 탁본을 손에 넣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거기에 쓰인 75자를 익혀 새로 써본 것이다. 글 내용은 상징적이며 길상적인 뜻이다.
원수 5년은 한 무제 5년으로 B.C. 118년에 해당한다. 추사가 글 뒤에 ‘원수경에 적혀있는 75자는 서경 고예 가운데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元壽竟款七十五字 西京古隸最古者)‘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아울러 이는 추사가 조선에 앉아 있으면서도 이 동경에 담긴 서예사상 역사적 가치를 환히 꿰뚫고 있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