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가 도자기의 나라였다고 해도 백자를 사용할 수 있던 것은 한정된 사람들뿐이었다. 궁중을 비롯한 그 언저리의 상류 계층이었다. 그러나 후기로 내려오면서 이런 신분적 통제는 허물어졌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백자를 생활 속에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전혀 무관했을 것같은 문인들까지도 애용자가 됐다.
문인이란 명목상일지라도 세속적인 욕심이나 욕망을 보여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조선시대 후기에 양반, 문인 수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이런 도학적 엄격성이 무너지게 됐다. 그래서 생활 속에 사치와 멋을 즐기는 부류도 생겨났으며 또 이는 문인 생활의 풍류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런 풍류가 도자기에 반영된 것이 백자 문방구류이다.
No.167 백자청화칠보문 또아리연적 白磁淸畵七寶文環形硯滴 지름 11cm 추정가 800만-1,200만원
따라서 조선후기 문방구 도자기에는 기본적으로 다른 나라의 그것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엄격성과 간결함이 담겨있다. 그런데 칠보문은 세속적인 욕망을 코드화한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칠보문 연적은 무엇인가. 문인 미학이 세속적으로 확장되면서 나타나게 되는 성속(聖俗)의 이른바 혼합 산물로 해석할 수는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