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도는 조선후기에 그림수요가 일반에까지 확대되면서 등장하기 시작한 그림이다. 물론 이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임진, 병자 양난을 거치면서 조선사회는 크게 무너졌다. 그래서 사회적 이념을 재구축하기 위해 유교 도덕을 재차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의예지 효제충신과 같은 간략하게 추린 유교적 덕목이 사회적으로 널리 소개된 것은 이 때였다. 문자도 출현 배경을 보면 이처럼 안팎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No.106 민화 문자도 종이에 수묵 각 31x23.6cm 추정가 1천만~1,500만원
초기 문자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목판 인쇄의 분위기가 있다는 것, 각각의 문자 속에 문자의 의미를 가진 일화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 그리고 문자 속에 작은 문자가 다시 들어 있다는 점 등이다.
8폭 병풍용으로 그려졌음직한 이 문자도의 내용은 ‘光風齋月 修心養性(광풍재월 수심양성)’이다. 풍광제월은 맑은 날의 바람과 비갠 뒤의 달빛이란 뜻으로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수심양성은 그런 마음을 닦아 본성을 기른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문자도 내용이 ‘인의예지효제충신’인 것과 달리 중국 영향이 강했던 전래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문자도 계열 중에서는 상당히 시대를 앞섰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