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정 그림은 폭이 매우 넓지만 실제를 들여다보면 산수는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다. 오히려 그림으로 생계를 꾸린 직업화가답게 화조화 쪽의 수량이 많다.
이 그림은 여름날 비온 뒤의 풍경을 그린 하경 산수이다. 비온 뒤의 풍경이란 물기를 잔뜩 머금어 짙은 빛깔로 변한 나뭇잎과 산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물안개가 빠질 수 없다. 역대 명화가로 이런 풍경 장면을 양식화한 사람이 미불(米芾) 부자로 현재(玄齋) 역시 이 기법을 썼다.
No.069 심사정 <하경 산수> 종이에 수묵담채 22.5x32cm 추정가 5,000만원부터
먹의 농담이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차츰 엷어져가고 있어 비가 걷히며 시야가 트이는 것을 효과를 연출하고 있다. 강변의 버드나무 숲 뒤쪽으로 계곡 사이에 걸쳐있는 물안개 역시 이런 분위기를 더해준다.
그림 속에서 은근하게 솜씨를 뽐낸 부분이 물기 먹금은 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집에 살짝 붓을 댄 담홍색 벽이다. 색은 물기를 머금은 증기 속에서 굴절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데 현재도 아마 그런 현상을 알고 있었을까.
먹의 적절한 농담에 몇 가닥의 용필을 섞어 탁월한 계절적 현장을 보여주는 수작이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