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도 1호선, 2호선 상감청자
2009년, 2010년에 조사된 충청도 태안 앞바다의 마도(馬島)1호, 2호선에서 각각 1점씩 나온 상감청자는 문공유 묘와 명종 지릉의 출토품과 같은 소형 음식그릇이 아니라 입체적인 주전자와 매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주전자와 매병은 청자 조형을 대표하는 중심 기형이기도 하다. 매병이 완전한 회전체라면 주전자는 구조상 양면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작은 음식그릇과 문양구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들의 재질은 중상품(中上品) 정도로 함께 발견된 많은 음식그릇 역시 대부분 중간수준의 청자여서 보령 원산도 해역과 진도의 명랑대첩로 해역에서 발견된 최상품 청자와는 분명히 구분된다.
그림1. 상감모란국죽문 매병<象嵌折枝文梅甁> 고려시대 후기, 1218년 이전. 태안 마도2호선, 인양유물,
H.39.1cm,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주전자의 몸통 중앙에는 간략한 모란문과 연화절지문을 새겼고 둥근 원형창의 외곽 배경에는 음각구름을 몇 군데 넣었다. 이러한 구성은 상감운학문을 조밀하게 넣은 최상품의 문양구성이 몇 차례의 생략과 단순화가 진행되면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매병도 유태색이 불순함에도 불구하고 몸통에 여섯 줄의 골진 주름과 능화창(菱花窓) 안에 상감절지문을 넣었다. 12세기 초에 시작된 이런 형식의 매병에는 능화창의 외곽 배경에 정교한 반양각 모란당초문을 새겨 넣는 원칙을 있다.(그림2, 그림3)
그림2. <半陽刻龍文梅甁> 고려시대 중기, 12세기 전기, H.43.9cm, 국립중앙박물관
그림3. <象嵌飛天文梅甁> 고려시대 중기, 12세기 후반, H.38.2cm, 개인소장
중상품 수준인 마도2호선 매병에 정교한 배경문양을 생략돼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볼 필요가 있다. 이들 주전자와 매병의 제작 시기는 1208년과 1218년 이전인데 이들보다 앞선 시기의 고급 청자에는 더 정교한 문양이 새겨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림4. 상감운학문 매병 <象嵌雲鶴文梅甁> 고려시대 후기, 13세기 전기, H.55.0cm,
『靑磁의 色 形』 (조선관요박물관, 2005)
매병과 관련해 강화도 천도 이후에 조성된 희종(1181-1237, 재위 1204-1211)의 석릉에서 출토된 <상감운학문 매병 조각>은 운학문 매병의 변천과정을 추적하는데 큰 의미가 있는 자료다. 매병의 목 밑에 보이는 빗살 선은 큰 여의두문의 일부이다. 또 단순화된 운문과 학의 날개, 다리 모습은 높이 55cm의 <상감운학문 매병>(그림4)의 운학문과 비슷하다. 유태도 엷은 회색의 유태색과 백상감 부위가 팽창해 유층이 들뜬 균열현상까지 유사하다.
그림5. 상감운학문 매병 <象嵌雲鶴文梅甁> 국보68호, 고려시대 후기, 13세기 전기, H.42.1cm, 간송미술관
운학문은 그림처럼 보이는 사생풍의 운학문 계통과 작은 단위문양을 사방 연속해서 조밀하게 구성한 복잡하고 화려한 장식의 운학문 계통의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 특히 국보68호의 <상감운학문 매병>(그림5)은 원의 우승상을 지낸 사천택(史天澤 1202-1275년)의 묘에서 발견된 <상감모란문 매병>(그림6)의 문양구성과 유사해 이것이 그가 고려를 방문한 1260년대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6. 상감모란문 매병<象嵌牡丹雲鶴文梅甁> 하북성 史天澤墓(1275년歿)출토, 고려시대 후기,
13세기 중기, H.46.0cm
여기에 소개한 3점의 매병은 모두 높이 50cm 정도로 비교적 규모가 크다. 몸통 상부는 역삼각형 형태로 외곽선은 완연한 ‘S’자형을 보이며 편평한 어깨에 상대적으로 작고 납작한 광구(廣口)형 구연(口緣)이 붙어 있어 전반적으로 늘씬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