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銅如來立像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초기 높이 11.2cm
2007년3월9일 서울옥션 제105회 근현대 및 고미술품경매 파트Ⅱ No.185 추정가 3500만-4500만원
맛에 시끄러운 사람들이 ‘반드시’라고 방점을 찍듯이 말하는 최후의 진미는 말할 것도 트뤼프에 푸아그라 그리고 캐비아다.
맛과는 별개의 세계지만 남다른 감각에 감성이 필수적인 골동 세계에서도 궁극의 소장품으로 손꼽히는 것이 있다. 바로 금속이다. 금속 유물은 그 폭이 상당히 넓다. 고대 청동기에서 중세의 여러 금속 부장품을 거쳐 마지막에 불상에까지 이른다. 그 중에서도 불상은 여타 금속 골동보다 격을 하나 더 높이 쳐주는 유물이다. 이는 출토품이든 전세품이든 그 자체로 신앙의 대상인 때문이기도 하다.
이 불상은 연대가 아주 높은 연화대좌 위의 여래입상이다. 손 모습-수인(手印)이라고 한다-은 한 손은 내려서 땅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은 가슴 언저리에서 들어 손바닥을 밖을 보이게 했다. 내려서 땅을 가리키는 오른손은 중생이 원하는 바를 무엇이나 들어준다는 뜻을 담은 여원인(與願印)이라고 한다. 밖으로 향하도록 손바닥을 편 왼손의 수인은 중생의 근심과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이다. 여래상에서는 보통 시무외인은 오른손, 여원인은 왼손인 경우가 많다.
여래상은 신체 비례가 알맞고 굴곡이 자연스럽다. 두상을 보면 날씬하고 가름한 모습에 크고 높은 복발(覆鉢)을 갖추고 있다. 이는 삼국시대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이다. 거기에 어깨에 걸쳐진 얇은 법의는 가슴과 무릎 쪽에서 각각 U 자와 V자 모습이 주름 보여 이 역시 삼국 시대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런 요소들을 고려하면 이 여래상은 삼국시대 후기에서 통일신라 전반기에 걸치는 시기에 조성됐다고 보여진다.
전체에 도금이 그대로 남아있고 보존 상태도 양호해 작은 입상이지만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 불상은 일본의 권위 있는 불상연구가 마쓰바라 사브로(松原三郞)의 『한국금동불연구』(1985)에 수록된 자료이기도 하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