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磁 陽刻長生文 六角甁 높이 23.9cm
2017년5월28일 서울옥션 제22회 홍콩세일 No.82, 290만 홍콩달러
조선백자의 멋은 소박한 가운데 은근하게 풍겨나는 멋이다. 이런 느낌의 운치는 다른 나라 도자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중국 도자기는 마치 제1의 명제가 ‘완벽한 기술’인 것처럼 빈틈이 없다. 명나라 성화연간(1464-1487)에 만들어진 작은 술잔인 계항배(鷄缸杯)는 허공에 들고 비춰보면 반대편이 보일 것 같이 얇고 투명하다.
일본 도자기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문양에 있어 신경질적이다. 마치 자로 잰 듯한 일본 그림을 보는 것처럼 그런 문양이 그대로 도자기에 옮겨져 있다. 뒷마무리의 어느 순간에 적당히 손을 뗀 듯 해 어딘가 빈틈이 보이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좌우가 대칭이 되도록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그저 그렇게 보아주면 충분하다고 여겼는지 대칭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 도자기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다.
조선 백자의 멋이란 이처럼 구수하면서 여유가 있고 또 인공보다는 자연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데 있다. 조선 후기가 되면 조선 백자의 그런 맛과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 있으면서도 장식과 문양에 있어 그 이전과 달리 훨씬 세련되고 고안된 것들이 등장한다.
정육각 아니 육각의 병에 굽을 별도로 만들어 달고 또 일체의 문양을 돋음 새김을 한 양각 처리의 병은 그런 계열의 백자 중 하나이다. 이 병은 몸체와 병의 목에 모두 각(角)을 넣었다. 각을 잡았다고 해도 손을 벨 정도로 날카로운 게 아니다. 부드럽게 면과 면이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형국이다.
문양은 장생문이 주문양이다. 조선후기에서 말기로 가면 갈수록 현세에 대한 욕망이 사회 전체에 만연하게 된다. 그래서 문양하면 도자기고 목기고 가리지 않고 길상문, 장생문이 범람했다. 이 병의 장생문 역시 그런 사회 분위기가 반영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격을 한층 드높였다.
거북, 학, 소나무 대나무 영지 사슴 등을 모두 양각으로 새겼다. 양각으로 새겼다고 했지만 제조기법상으로 보면 문양 부분만 남기고 주변을 깎아낸 게 된다. 파내는 면적이 음각에 비해 훨씬 넓어지므로 그만큼 공력이 더 많이 드는 기법이 양각이다.
이 육각병에는 한층 수준을 높여 양각으로 남긴 곳에 또 한 번 높낮이를 가해 입체감을 시도했다. 대나무의 마디 부분은 도톰하게 남기고 줄기는 그보다 가늘게 깎아냈다. 소나무도 잎은 줄기와 달리 한층 얇게 남겼다.
굽도 멋을 낸 부분의 하나이다. 애초부터 굽을 함께 만든 여타 도자기와 달리 굽 부분을 달았다. 그리고 코끼리 눈처럼 보인다는 안상(眼象)을 파내 장식을 더했다. 이렇게 해서 굽이 아닌 장식좌대가 완성됐는데 이는 다분히 조선 후기에 연행 사절이 중국에서 들여온 실내 장식물-나무를 깎아 만든 좌대에 올라가 있는 것들이 많다-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장식을 가했지만 여전히 조선백자의 부드러운 멋을 간직한 이 병은 실용적인 술병은 아니다. 그 보다는 중국 수입품을 대신해 귀인의 사랑방 문갑 위를 장식할 용도로 특별 주문된 백자라고 할 수 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