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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션하우스의 명품들] 97. 백자청화 소상팔경문 병
  • 1741      

白磁靑華 瀟湘八景文 甁 높이 33cm
2018년5월27일 서울옥션 제25회 홍콩세일 No.62, 유찰


청화 백자병은 18세기 이후 항아리만큼이나 많이 제작된 도자기이다. 앞에서도 소개했지만 18세기 전반기는 조선후기의 경제 호황기였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경상수지 흑자시대였던 것이다. 경상수지란 국제무역을 보여주는 대차대조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에 조선은 수출초과로 외화가 국내에 쌓이고 있었다.

당시의 외화란 말할 것도 없이 은(銀)이었다. 조선은 숙종(재위 1674-1720)후반과 영조(재위 1724-1776)의 전반기에 중국과 일본에 인삼을 가져다 팔았다. 일본 같은 데에서는 ‘고려 인삼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또 청초에 명나라 저항군을 봉쇄하기 위해 연안무역을 금지하면서 조선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비단을 중계무역하면서 큰 이득을 얻었다.


그 덕분에 사회는 풍요를 넘어 과열 기미까지 보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영조와 정조 시대에 수차에 걸쳐 ‘수놓은 비단’과 같은 사치품의 사용 금지령을 내린 사실이 보이기도 하다. 조선후기에 수준 높은 도자기가 만들어진 데에는 그 이면에 놓은 이와 같은 경제적 번영과 발전 덕분이라는 이유도 빼놓을 수 없다. 

18세기 들어 많아진 청화백자 병 역시 그런 점에서 시대의 산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풍요로운 사회를 배경으로 여기 저기 운치 있는 모임과 연회가 열리면서 연회 자리마다 커다란 병에 잘 익은 술이 가득 담겨졌을 것이다. 또 모임 자리의 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병도 그와 같은 수준이 요구됐을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병의 높은 수준은 우선 희디 흰 몸체가 말해준다. 사옹원의 광주 분원은 1752년 분원리에 정착하기까지 흙과 땔감을 찾아 광주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 중에서도 번천리, 금사리 같은 데는 구우면 뽀얀 색이 드러나는 좋은 태토로 유명했다.

그리고 전통 깊은 고전 소재의 문양 역시 수준을 대변한다. 이 병은 4면에 둥근 화창(花窓)을 만들고 그 안에 이른바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한 폭씩 그려넣었다. 소상팔경이란 중국 동정호 일대의 승경지를 말한다. 이곳의 경치는 예부터 이름이 높았다. 북송 시대에 이미 수묵 산수화를 대표하는 소재, 화제(畵題)로 정착했다. 

한국에서는 조선에 앞서 물론 고려 중기때부터 그려졌다. 그만큼 전통과 뿌리가 깊은 소재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병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도자기 문양까지 들어온 것이다.



흰 구름이 떠있는 강가에 돛단 배들이 포구를 향해 몰려오는 모습은 원포귀범(遠浦歸帆)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절벽 한 쪽에 펄럭이는 깃발이 꽂힌  누각이 보이고 허공에 뜬 달은 악양루의 가을밤을 묘사한 동정추월(洞庭秋月)임을 말해준다. 

이 병이 18세기말이나 19세기의 것이 아니라는 이유는 형태에 있다. 18세기의 병은 몸체의 형태가 마치 공처럼 둥글다. 거기에 목은 가늘고 짧고 주구도 좁다. 또 굽이 낮은 것도 18세기를 말해주는 특징의 하나이다.

좋은 태토에 솜씨 있는 화청장(畵靑匠)-광주 분원에서는 청화 안료로 그림만 그려 넣던 그림 장인을 이렇게 불렀다-의 소상팔경이 격조 높은 그림은 이 병의 높은 품격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말해주는 요소이다.(y)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2.02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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