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磁靑華 龜蓮葉形硯滴 높이 7.7cm
2003년9월25일 서울옥션 제78회 미술품경매 No.157, 5300만원 낙찰
동물 형상의 연적은 사기장의 싱거운 장난기에서 비롯됐을지 모르지만 거기에 솜씨가 더해지면 당연히 예술이 된다. 사물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 예술이 된 연적의 전통은 멀리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남동녀(童男童女) 연적과 원숭이와 오리 연적 같은 것은 너무도 유명하다.
그 외에 사자, 거북이, 불고기, 신선을 본 뜬 연적도 고려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조선에 들면 초기에는 연적 자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있다고 해도 청자의 후예쯤 되는 분청사기로 만든 연적 정도이다. 맥이 끊긴 듯이 보이는 연적은 18세기후반 들어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는데 마치 어딘가 흐르고 있던 지하 수맥이 다시 지상으로 분출한 것같은 인상이다.
여러 형상의 고려청자 연적, 국립중앙박물관
이때부터 실로 다양한 형태의 연적이 만들어진다. 사각, 팔각, 원형 등 기하학적 형태 말고도 여러 동물의 형태가 동원됐다. 해태, 개구리, 두꺼비, 오리, 닭, 물고기, 거북 등의 연적이 탄생했다. 버라이어티한 외형의 연적이 왕실, 사대부 계층만 아니라 중인사회까지 내려와 애용되고 있을 때 그림 쪽에서는 민화가 크게 유행하고 있었다. 민화 중에서 연적과 연관해서 생각하면 당연히 떠오른 것이 책거리이다.
복숭아형 연적이 그려진 책가도 부분(국립고공박물관 소장)
책거리에는 병풍이든 낱폭이든 주역은 단연 책이다. 책갑에 들어있든 혹은 펼쳐져 있든 여러 모습의 책이 등장한다. 그리고 주변에 책과 관련한 여러 장식품이 보인다. 책장 장식물, 즉 산호, 향로, 도자기가 그려지고 덩달아 문방구가 끼어들어 있다. 책거리에 보이는 문방구는 크게 필통과 벼루이다. 필통은 나무로 된 것, 중국청동기로 된 것 그리고 도자기로 된 것 등 다양하다. 그중에는 화려한 외형이나 문양으로 보아 중국수입산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가회박물관 소장 책가도 속에 보이는 물고기형 연적
벼루도 많이 함께 그려졌다. 여기도 화려한 모습으로 묘사돼 있는데 당시 인기 높았던 남포벼루였는지 혹은 수입산 단계연이나 흡주연인지는 확인하기 쉽지 않다. 이렇게 많이 그려진 벼루와 달리 그 짝이 되는 연적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띄이기라도 하면 박수라도 치고 싶을 정도이다. 책가도에는 등장하는 것은 복숭아연적이나 물고기 연적처럼, 밋밋한 사각연적보다는 입체적인 형체를 지닌 것이 대부분이다.
선문대학교 박물관 소장 책가도 속의 거북형 연적
화려한 장식물들이 볼만한 선문대학교 박물관소장의 8폭 책거리 연작에는 이색적인 연적이 하나 등장하는데 그 모습은 길게 뺀 목이나 볼록하게 솟아오른 등의 묘사 등이 이 거북형 연적과 매우 유사하다. 또 아랫부분은 꽃잎 같은 것이 받치고 있는 것처럼도 그려져 있어 이 연적의 거북이 연잎위에 앉아 있는 것과도 닮아보인다.
물론 그림 속 모델이 된 연적이 이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복숭아 연적과 물고기 연적도 그림 모델이 된 이상 연잎 위에 올라앉은 이색적이고 희귀한 거북형 연적은 민화화가의 눈을 매료시키지 못했다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19세기 중반 양근 분원가마가 지닌 뛰어난 예술성이 반영된 형상 연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