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磁靑華山水文四角硯滴 9x11.5x9.5(h)cm
2004년12월17일 서울옥션 제92회 미술품경매 No.103 6000만원 낙찰
조선시대 백자에 청화 문양이 급증하는 것은 몇 차례 소개한 대로 18세기 들어서부터이다. 그런데 18세기의 청화백자의 문양과 19세기의 그것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데가 있다. 물론 시대는 칼로 두부 자르듯 나누지 못해 18세기의 문양이 그대로 19세기에 전해진 것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두 시기의 특징은 분명하다. 18세기를 도자기가 회화와 만난 시대, 즉 문양 속에 회회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시대라고 하면 19세기는 세속적 행복을 바라는 길상(吉祥) 문양이 도자기를 뒤덮었다고도 할 만한 양상이 드러난 시대이다.
이렇게 시대가 나뉘지만 18세기에 출현해 19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은 문양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문인 감상화의 정점에 있었던 산수화 문양이다. 산수화 문양은 병, 항아리, 접시 할 것 없이 다양하게 그려지면서 18세기부터 19세기말까지 죽 이어졌다.
그런 산수문양 중에서도 적통(嫡統) 대접을 받는 것이 따로 있다. 좀 천박하게 비유해 ‘썩어도 준치’격인 소상팔경 문양이다. 소상팔경은 중국 동정호 일대의 명승지를 말한다. 이것이 송나라 들어 그림 소재가 되면서 대인기를 끌었다.
그런 호응에 부응해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계속 1천년 넘게 그려졌는데 조선도 비슷하다. 고려 명종(재위 1170∼1197) 때부터 그려져 조선이 되면서도 전통(?)있는 소재로서 계속해 그려졌다. 그것이 18세기 들어 도자기까지 들어온 것이다. 소상팔경은 말 그대로 여덟 경치를 그린 것이지만 도자기에서 인기 높았던 것은 한두 테마정도 있다.
백자청화 산수문항아리(부분), 높이 37.5cm 국립중앙박물관 박병래기증
그중 하나가 동정추월(洞庭秋月)이다. 동정호 하면 중국3대 누각의 하나인 악양루(岳陽樓)를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동정추월은 이 악양루 위에 둥근 달이 떠서 호수를 비추는 것이 주 내용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18세기후반의 큰 청화백자 항아리에 이 문양이 그려져 있다.
백자청화 소상팔경문 접시, 지름 29.0cm 국립중앙박물관 이홍근기증
또 비슷하거나 약간 늦은 시대의 접시에도 동정추월이 그려져 있다. 이들 문양을 동정추월계통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깃발이 펄럭이는 누각에 허공에 뜬 둥근 달 그리고 배가 떠있는 호수가 같다. 멀리 산봉우리만 뾰족하게 보이는 산도 공통점이다.
이를 보면 이 연적의 윗면에 그려진 산수문양 역시 동정추월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단 좌우가 바뀌었을 뿐이다. 연적은 옆4면 중 3면에도 산수를 그렸다. 측면의 산수문양은 그런데 소상팔경과 무관하다. 흔히 도자기 애호가들이 ‘분원 앞 우천(牛川) 풍경’이라고 말하는 산수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남은 한 면은 패랭이꽃이 두드러지는 초화문이다.
윗면의 동정추월은 볼만할 솜씨가 아닌데 그 옆에 붙은 출수구(出水口)가 기묘하다. 조선후기 수많은 연적 가운데 이렇게 키 작은 굴뚝처럼 사각으로 만들어 붙인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남에게 없는 것, 흔하지 않은 것을 취미로 삼는 애호가라면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연적 중 하나이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