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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션하우스의 명품들] 90. 백자청화 산수시문 연적
  • 1688      

白磁靑華山水詩文硯滴 8.8x9.4x6.7(h)cm
2012년9월26일 서울옥션 제125회미술품경매 No.427 3300만원 낙찰


조선후기 들어 과거지망생 수가 급증하면서 덩달아 개화한 것이 시(詩)의 시대였다. 과거 과목 중 하나에 시가 들었기도 했거니와 운치 있는 시를 지을 줄 모르면 제대로 된 문인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시를 짓는 일은 문인 사회를 넘어 중인들까지 번졌고 또 기방에서도 한글을 섞어 한시를 읊는 가요가 크게 유행했다.

그런 시절을 배경으로 도자기에도 자주 시문이 적히게 됐다고 할 수 있다. 강가의 정자와 조각배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은 말 그대로 한 폭의 산수화이다. 그 빈 여백에 시귀 하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네 면을 돌아가면서 시구를 적었다. 그런데 이 시구는 모두 제각각이다.

우선 산수화가 그려진 윗면의 구절은 ‘五月江深草閣寒(오월강심초각한)이다. 이는 당나라의 시성 두보가 읊었다. 성도 시절 그의 후원자였던 엄무가 성도를 떠나 장안으로 돌아가기 전에 술과 안주를 가지고 초당을 방문했을 때(「嚴公仲夏枉駕草堂 兼携酒饌 得寒字」) 지은 시의 한 구절이다.

앞 구절은 엄무에 대한 찬사이고 뒤쪽은 외진 곳에서 한가롭게 사는 삶에 만족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 구절은 보통 ‘백년지벽시문형(百年地僻柴門逈)’과 짝이 돼 ‘평생 외진 곳에 살아 사립문도 아득하고, 오월의 강은 깊고 초가집은 쓸쓸하네’로 많이 읊어졌다.


최북 누각산수도 40.0x79.0cm 개인

뿐만 아니라 그림의 소재로도 쓰여 명나라 후반부터 자주 그려졌고 조선에서도 18세기 중반 대단한 활동을 보인 최북(崔北 1712-1786경)도 큰 부채에 이 구절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 게 있다.

측면 시는 2수를 차례로 적었는데 하나는 당시 분원 주변에서 많이 읊어졌던 시구였고 하나는 생소한 것이다. 우선 생소한 것부터 보면 ‘한잔 술에 한잔 술에, 늙은 홀아비 봄바람에 고꾸라지네, 공명도 부귀도 다 싫고, 단지 남은 인생 일 없기만을 바랄 뿐이네(一杯酒一杯酒,
鰥翁醉倒春風前, 不願貴不願富, 但願無事送餘年)’이다. 시의 작자는 찾을 수 없는데 어딘지 분원 도공의 힘겨운 생활을 읊은 듯한 느낌도 있다.



백자청화 시명주연문(詩銘酒宴文) 각병, 높이 16.6cm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두 번째 시는 술에 관련된 것이기도 해 술병이나 술항아리에 여러 번 쓰인 적이 있다. 리움 미술관에는 커다란 술항아리에 이 시구가 적혀 있으며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에는 사각 술병의 한쪽에 이 구절이 있다. 양쪽 모두 맨 마지막 구절이 이 연적과는 다르다. ‘말없이 술잔만 주고받는다(長酌不言無)’로 돼있다. 또 이 시 역시 작자가 확인이 안 된다. 그러나 시의 내용은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더없이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願以酒泉土  원컨대 주천의 흙으로 
陶成白玉壺  백옥 같은 술항아리를 빗어
相逢知己友  마음 맞는 친구를 부르니
世事雲外閑  세상사 구름 밖에 한가롭도다 

그런데 술병이나 술항아리가 아니라 글 짓는 문인의 서탁 위에 올려놓는 연적이 되면 운치보다는 전위적이란 느낌이 없지도 않다.(y)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2.02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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