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磁靑華葡萄文透刻筆筒 높이 14.5cm
2007년5월22일 서울옥션 제106회미술품경매 No.37 유찰
19세기 분원시대에 무르익은 솜씨가 만들어낸 백자 필통의 하나이다. 우선 전체의 비례가 발군이다. 단정하면서도 안정된 느낌이 들도록 높이와 폭의 균형이 절묘하게 맞추었다. 백자의 색은 분원 전성기의 그것답게 살짝 푸른빛을 머금고 있다.
이렇게 잘 정제된 바탕 위에 장인의 조각장식 실력이 본격적으로 발휘돼있다. 우선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이다. 투각(透刻) 기법을 쓰면 중간에 빈 공간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흙 자체에 힘이 약하게 되면 주저앉거나 아니면 뒤틀린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래서 이를 잡아주고 지탱해낼 지지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중간의 투각부분과 달리 위아래에 좁은 띠 형태의 태토를 그대로 남긴 것을 무엇보다 이를 위한 때문이다. 투각 기법의 이런 구조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필통의 장인은 이런 조건 아래서 자기 특유의 솜씨를 발휘했다.
위, 아래의 띠는 모두 턱 부분만 남기고 한 겹을 벗겨냈다. 이로써 시크(chic)한 감각을 먼저 챙겼다. 그리고 아래쪽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방을 돌아가며 작은 구멍을 냈다. 또 중간 중간에는 이른바 코끼리 눈처럼 생긴 안상(眼像)을 새겼다. 이로서 위아래의 변화는 물론 투각부분이 아래쪽까지 연장되고 있다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런 준비를 마친 뒤에 몸체 부분에 포도문양이 투각됐다. 구성물은 세 가지이다. 포도 잎과 포도나무 줄기 그리고 포도 알이다. 특히 가는 줄기는 인상적이다. 이 줄기는 불연속적으로 몸체 전체에 반복되어 있는데 여기에도 복선이 깔려 있다. 넓적하게 펼쳐진 포도 잎과 우선 시각적 대비를 이룬다. 이로서 강약(强弱), 태세(太細) 변화라는 동적인 느낌을 확보했다.
이런 장식적 효과 외에 여기에는 별도의 역할이 담겨 있다. 포도 잎의 넓은 면적으로 투각 부분의 불안정한 무게 균형을 보충하는 임무를 맡게 한 것이다. 이런 구조는 탐스러운 포도 알 조각에도 연장돼 있다. 주렁주렁 매달인 포도 알은 마치 포도 잎 뒤로 자태를 감추는 듯 이어져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아래로 쳐져 있다. 그리고 아래쪽 띠의 태토와 연결돼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위쪽 띠의 태토가 넓적한 포도 잎과 포도송이를 거쳐 아래쪽 띠의 태토까지 이어지게 됐다. 장식과 구조를 보일 듯 말 듯 조합시킨 합친 장인의 고안에 찬사를 보낼 만 한 대목이다.
그런데 이 장인은 마지막까지 한 수를 더 보여주고 있다. 아래 띠의 흰 바탕에 청화 점을 찍어 시각적으로 아래에 처진 포도송이가 띠까지 이어져 있도록 보이게 했다. 그 외에 밑면을 비스듬히 깎아내 바닥 안쪽에 깊숙이에 굽을 만든 것 역시 19세기 분원장인이 지향하던 세련된 감각의 세계의 또 다른 표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