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磁靑華楪匙七件一括 각 지름 16.8cm 17.5cm 17.2cm 18cm 15cm 15.7cm 15.1cm
2012년12월12일 서울옥션 제126회 미술품경매 No.50번 유찰
컬렉터 가운데 독특한 주의, 주장을 내세운 개성파들이 있다. 우선 형태나 색깔이 제아무리 좋아도 주둥이 끝에 이가 하나 빠져 있으며 단번에 외면하는 완벽주의파가 있다. 또 제아무리 잘 생긴 항아리, 접시라도 ‘누가 부엌세간을 모으냐’ 면서 홀대하는 문인취향주의자도 있다.
서예가로 유명한 소전 손재형(素筌 孫在馨 1903-1981)은 후자를 대표하는 컬렉터라 할 수 있다. 그는 깔끔한 성격에 수집품도 단정한 것을 좋아했다. 늘 글씨를 쓰는 만큼 주방향은 문인 취향이 물씬한 문방구류였다. 그러면서 항아리나 접시는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부엌세간’ 운운 하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 것으로 유명했다.
일제 때부터 골동시장을 지켜봐온 우당 홍기대(又堂 洪起大) 선생이 쓴 회고록에는 부엌세간 회피파였던 그도 탁월한 문양의 청화백자 접시 앞에서는 체면 불구하고 탐을 냈다는 얘기가 있다. 그는 한때 우당 선생이 모아놓은 문양 좋고 색상 좋은 청화백자 세트(회고록에는 열 몇 점이라고 돼있다)를 보고서 눈알을 빼가듯 제일 마음에 드는 것 하나만 사겠다고 해서 우당과 크게 언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소전과 우당이 다툰 문제의 접시는 지금 전하지 않는다. 이 접시는 부산피난 시절 몇 사람 손을 거쳐 외국군에 팔려 프랑스로 건너갔다고 한다. 실물이 전하지 않아 실상은 알 수 없으나 아마까지 지금 있었다면 이 접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 접시에 보이는 색상 좋고 문양 탁월하며 또한 보존 상태가 뛰어나 어디하나 흠간 데 없는 사실이 소전의 컬렉션주의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19세기 들어 민간에서도 청화백자 식기를 사용했으나 이 접시 7점은 궁중이나 왕실에서 특별 주문해 만든 것이다. 무엇보다 문양과 색상이 그를 말해준다.
접시 모두에 길상을 상징하는 문양이 들어있다 노송, 사슴, 거북, 봉황은 말할 것도 없고 ‘복(福)’자가 쓰인 주변에 칠보문을 돌린 것도 그렇다. 또 다른 접시는 국화꽃 주변에 변형된 박쥐 문양을 그렸다.
이렇게 특별 주문해 만들었으나 사용은 한두 번 잠깐 쓰고 그 후 깊이 보관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 이 선생의 판단이다. 접시 유약에서 스크래치 같은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 일화이지만 청조가 망한 뒤 자금성 유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 번도 쓰지 않고 창고에 보관돼 있는 도자기들이 수도 없이 많이 발견됐다는 기록이 있다.
정교하고 깔끔하면서 격조 높은 19세기 분원제작의 청화백자 접시세트는 어느 면에서 크리스티나 소더비가 별도의 장르로 다루고 있는 유럽 왕실이나 귀족집안의 은(銀)식기 세트들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미술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