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磁靑華山水文偏甁 높이 29.5cm
2010년12월18일 서울옥션 제118회 미술품경매 No.268번 유찰
18세기 말에서 19세기로 넘어가면서 불현듯 병의 시대가 열린다. 술병이 범람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의 안정과 경제발전과 더불어 도처에 풍요로움이 넘치고 아울러 유흥문화가 번성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목이 길고 동체가 둥근 병은 보통이요 사각 병에 편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뿐만 아니라 갖은 세련미를 더한 병들이 이 시기에 등장한다. 세련미는 형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문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격을 높게 친 것이 산수문이다.
산수문은 말 그래도 산수화의 한 장면을 도자기에 옮겨 그린 것이다. 먼 산을 배경으로 강가에 정자가 있고 또 강물 위에는 돛을 펼친 작은 배 하나가 미끄러져 가고 있는, 그런 모습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산수문이 그려지고 있을 때 화단에서는 실제로 그와 그림을 그리는 남종화(南宗畵)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남종화는 꼼꼼하고 치밀한 필치와는 거리가 멀다. 간략하고 소략한 붓질로 문인들이 가슴속에 품고 있는 산과 강을 그린 것이 보통이다. 그 사이로 간혹 돛단 배 하나가 떠있거나 또는 강가 정자에는 이야기를 나누는 문인들의 모습이 화폭이 담겼다.
이 편병의 산수문 역시 당시 유행한 남종화의 구도,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다소 필획이 많아 보이지만 산수의 배치와 강상의 돛단배, 물가 정자 그리고 주변의 인물들 모두가 남종화의 구성요소 그대로이다.
그림을 제외하고 도자기만 보면우선 백토의 색상이 뛰어난 것이 눈길을 끈다. 주둥이를 달면서 안으로 후려쳤다가 밖으로 벌어지게 한 것은 다분히 사치가 사회문제가 된 ‘멋 부림 시대’라는 사회 분위기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깨의 청설모와 같은 조각은 끈을 끼우는 고리에 멋을 부린 것이다. 조선 백자에는 다른 나라와 달리 조각 자체로 된 도자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간혹 무덤 속에 함께 부장한 명기(明器)에서 조각적 솜씨를 엿볼 뿐이다.
사정이 그런 가운데 이 병에 보이는 청설모 조각은 조선 후기의 도공이 가진 조각 솜씨의 일단을 짐작케 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청설모 조각은 아래쪽에 붙여 놓은 고리와 함께 편병을 묶어서 들고 다니게 할 수 있는 끈을 묶기 위한 것이다.
밖으로 넓게 벌어진 굽은 좁게 휘어졌다가 밖으로 벌어진 구연부와 함께 안정감 있는 비례감각을 보여준다. 색과 균형감 그리고 거기에 좋은 필력의 도안이 함께 갖춰진 편병은 시중에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 선생의 조언이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