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磁靑花 獬豸麒麟雲龍文 壺 높이43cm
2005년3월16일 서울옥션 제94회 미술품경매 No.116번, 유찰
도자기 컬렉션의 제1원리는 ‘희귀한 것을 놓치지 말라’이다. 이는 수집가들의 첫 번째 자랑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미술관이라면 얼굴이 되는 대표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청화백자 항아리는 말 그대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사례이다.
청화백자 항아리에 흔히 보이는 용 문양과 함께 해태와 기린 문양이 나란히 그려져 있다. 용 문양도 일반적이지 않다. 보통은 배경이 없이 구름을 그려 허공임을 알려주는데 여기서는 일견 파도로 오해할 정도로 잔 구름이 가득한 허공이 그려져 있다. 이를 배경으로 여의주를 쫓는 용이 힘차 보이는 인상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다른 두 면에 각각 능화창을 내고 그 안에 해태와 기린을 그려 넣었다. 해태는 전설의 동물이지만 민화에 종종 등장해 낯이 익다. 하지만 기린 쪽은 민화에도 자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해태와 기린을 용과 함께 도자기의 문양으로 쓴 것이다. 이들 세 영물(靈物) 문양은 현재 알려져있는 도자기 도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용문부터 보면 청화 용문항아리는 임진왜란 이후 18세기 초에 궁중용으로 다시 제작됐다. 이때 발톱이 다섯인 오조(五爪) 용이었다. 그리다가 18세기 중반이 되면 사조(四爪)용도 그려진다. 그리고 나서 구름 속의 용 즉 운용문 청화백자의 전성시대가 열린다.
이 청화백자 운용문항아리에 용 이외의 동물이 함께 그려진 사례 역시 극히 드물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호랑이가 함께 그려진 사례가 하나 있을 정도이다. 이 항아리에서는 실제의 동물인 호랑이가 아니라 용과 나란히 상상속의 신령한 동물인 해태와 기린이 그려져있다.
용은 당연히 왕과 왕권을 상징한다. 해태와 기린 역시 그와 관련된 권위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그렇지만 해태와 기린이 생활도구, 용구의 문양으로 쓰인 사례는 기실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 가운데 눈에 띄는 용도가 조선시대 흉배이다. 조선시대 흉배에는 대군(大君), 즉 왕자들의 관복의 흉배에 기린을 수놓았다. 그리고 국왕 직속인 대사헌은 해태 흉배의 관복을 입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이 청화백자 항아리는 궁중과 관련 깊은 어떤 특별한 용도로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특별한 용도라고 하는 것은 이런 유의 항아리가 이때 제외하고 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잠시 항아리를 더 소개하면 몸체 위쪽에 여의두문을 두르고 아래쪽에 청백, 청백의 연판문을 둘렀다. 이는 당시에 자주 보이는 관행적 문양이다. 연판문 아래에 공간을 비워 놓은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 항아리처럼 연판문 아래의 빈 공간에 다시 능화창을 그려 넣어 치장한 장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덧붙이면 곧게 올라간 구연부에 파도처럼 보이는 당초문양을 넣은 것은 이 항아리의 제작 연대가 올라간다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는 포인트이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