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磁鐵畵 雲龍文 壺 높이48.5cm
2006년3월17일 서울옥션 제100회 미술품경매 No.83번, 16억2천만원 낙찰
2006년 3월 서울옥션은 100회째 경매를 맞이했다. 한국미술시장에서 경매가 단속적으로 열린 적은 있지만 100회를 지속된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서울옥션은 여러 행사를 준비하면서 100회라는 의미를 살려 명품 100점만을 소개하는 특별경매를 준비했다. 100점만으로 치워진 특별 경매에서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로 주목을 받은 고미술품이 이 백자철화 운용문 항아리이다.
용 문양은 몇 번이고 설명했듯이 왕조시대 최고권위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조선백자에서는 이미 전기에서부터 그려졌다. 이때는 명으로부터 비싼 청화를 수입해 사용했다. 따라서 명 청화도자기와 색이 거의 방불할 정도로 짙은 청색을 냈다.
그러다가 도중에 철화(鐵畵), 즉 산화철을 안료로 한 철화 운룡문이 등장했다. 명 청화안료의 조달이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임진왜란으로 인해 수입 루트가 끊긴 때문이었다. 따라서 궁중 등에 큰 연회에 쓰인 대형 항아리에는 청화 대신 어디에나 있는 석간주에서 채취한 산화철을 모아 썼다.
붉게 녹슨 색을 내는 산화철안료는 의외로 흰 백자 바탕과 잘 어울렸다. 임진왜란이 끝난 17세기 전반에서 17세기 내내 그리고 18세기 초엽까지 이 안료를 쓴 용문항아리가 제작됐다.
백자 철화운용문 항아리 높이48cm 17세기초 1996년10월 뉴욕크리스티 814만7500달러 낙찰
그러나 당시는 시절이 시절이었던 만큼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백자철화 운용문 항아리는 매우 귀한 물건이 됐다. 더욱이 1996년 10월 뉴욕 크리스티에서는 이 백자철화 운용문 항아리 한 점이 841만7500달러(당시환율 약 75억원)라는 거액에 낙찰되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100회 경매에 나온 이 항아리를 굳이 비교하자면 크리스티에서 낙찰된 것보다 0.5mm가 더 크다. 또 허리 아래에서 굽으로 이어지는 선이 훨씬 빠르게 감겼다. 즉 더 홀쭉하다. 문양은 서로의 특징이 다른데 여기서는 활달한 필치가 눈길을 끈다.
그렇지만 모두 임진왜란 전후한 무렵 광주 분원에서 만들어졌다. 뚜껑이 덮일 것을 고려해 구연부를 안쪽으로 오므라지게 만든 것은 이시대 항아리에 모두 보이는 모습이다. 물론 현재 알려진 백자철화 운룡문 항아리의 뚜껑은 하나도 전하지 않는다.
백자철화 운용문 항아리 17세기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보물645호
나란히 뚜껑 없는 항아리로 매우 유사한 것이 이화여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 항아리는 1978년 보물 645호로 지정됐다. 서울옥션의 경매에 나온 이 항아리는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거래된 조선시대 백자항아리로는 최고가인 16억2천만 원에 낙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