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동화 연화문 항아리
白磁銅畵 蓮花文 壺 높이30.1cm
2008년6월11일 서울옥션 제111회 미술품경매 No.143번, 유찰
붉은 색 안료로 연꽃을 큼직하게 그린 항아리다. 연꽃만이 아니라 양쪽으로 뻗어나가 어딘가 시들어 보이는 연잎도 있다. 하단에는 무심한 선 몇 가닥으로 물결인 듯 보이는 문양도 넣었다.
그런데 이렇게 붉은 색 안료, 즉 진사(辰砂)로 연꽃을 그린 항아리는 더러 보이지만 청화로 연꽃을 그린 항아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분원 항아리 가운데 필치가 하도 좋아 흔히 김홍도가 와서 그렸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항아리도 진사와 청화를 함께 써서 연꽃을 그렸을 뿐이다. 이 역시 자세히 보면 연꽃은 진사로 그렸고 청화로 그린 것은 목덜미의 여의두 문양과 옆으로 뻗어나간 연잎이다.
백자 진사청화연화문 호 18세기 높이44.6cm
시대가 후기로 더 내려오면 넓적한 판에 청화로 연꽃 문양을 넣은 것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연꽃을 청화로 그린 것은 이를 제외하면 전무 하다시피 하다. 그래서 진사를 써서 연꽃을 그리는 것은 어떤 전통의 흐름 같은 것이 있었던 듯하나 그 연원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붉은 색을 내는 진사는 산화동을 말한다. 이것이 도자기 안료로 쓰인 것은 중국에서도 청화보다 약간 역사 앞선다. 원나라에서 진사가 도자기 안료로 쓰였을 때 고려에서도 청자에 이를 써서 붉은 색을 냈다. 진사의 사용은 조선에도 계승돼 15세기에 쓰였다고 하나 현재까지 기록만 전할뿐 실물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진사는 청화보다 다루기가 훨씬 어려운 안료이다. 휘발성이 강해 자칫 온도가 높으면 날아가 버리고 흐릿한 자국만 남는다. 전문가 이 선생의 말에 따르면 반대로 온도가 낮을 경우 검게 발색된다고 한다. 이 항아리에서 연 줄기의 가시로 찍힌 점이 모두 검게 보여 진사의 뭉친 정도 때문에 열이 덜 전해져 검게 남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18세기 후반에 진사로 연화문을 그린 항아리는 모두 정해진 패턴처럼 동일한 스타일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몇 개 선으로 그린 물결 위로 줄기 셋이 올라오는데 하나는 몽우리가 벌어지는 연꽃이고 다른 둘은 양쪽으로 뻗어가면서 고개를 숙인 잎이 된다.
대개 이런 모양이므로 당연히 같은 화수(畵手)의 솜씨이거나 같은 가마의 제작이 추정되고 있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에 나란히 있는 아타카(安宅)컬렉션의 항아리와 이병창 컬렉션의 항아리를 꼽을 수 있다.
백자 진사연화문 항아리 18세기 높이 27.5cm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아타카컬렉션
백자 진사연화문 항아리 18세기 높이 29.6cm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이병창컬렉션
연꽃 스타일에서 차이점을 찾기 힘든데 스타일만 그런 게 아니라 백자의 몸체 색이 조금 거칠어 보이는 느낌도 동일하다. 그래서 이런 요소를 감안해 분원 제작이기보다 어느 민간 가마에서 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일본 쪽에서는 하고 있다.
옥션의 항아리는 오사카 것보다 백자의 색이 좋다. 이 항아리에는 약간 다른 점도 보이는데 다른 면에 그려진 연꽃이다. 이 역시 오사카 항아리들의 문양과 거의 같다. 다른 것은 연봉에 보이는 연꽃잎이 약간 갈색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 역시 가마 속의 온도 차이에 따른 색 변화이다.
조선시대 도자기에 색을 낼 수 있는 안료는 산화코발트=청화, 산화동=진사 그리고 산화철=철화 세 가지뿐이다. 이를 사용해 만든 도자기를 보면 청화가 수만이라면 철화는 수백의 단위는 된다. 진사는 여기에 비해 한 자리 수를 넘지 않는다. 그만큼 백자 진사는 귀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