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청화 화조 현주진준명 팔각항아리
白磁靑花 花鳥玄酒盡尊銘 八角壺 높이29cm
2006년4월26일 서울옥션 제101회 미술품경매 No.122번, 유찰
조선 도자기의 유려함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선입니다. 도자기에서 맛볼 수 있는 조선적인 선은 여럿입니다. 어깨에서 흐르는 선이 대표적이지만 그 외에도 주둥이의 처리, 밑면의 처리 등등 살펴볼 곳이 꽤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단연 일급이 각선(角線)입니다. 각선은 각병이나 각항아리에 보이는 선입니다.
조선의 도자기에서 각을 넣은 만든 것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 더해 각의 운치가 기막힙니다. 각이란 두 개의 면이 서로 만나 생기게 되므로 자연히 날카롭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각병이나 각항이리에 보이는 선은 부드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완만 무애한 선에서 감상자들은 조선적인 심성까지 읽어낼 정도입니다. 일본의 한국도자기 애호가들을 매료시킨 것도 바로 이런 부드럽고 평화스럽고 그러면서도 당당한 선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항아리는 각선이 빚어내는 기품 위에 어깨가 조금 내려온 곳에서 설정돼 있는 듯 군의 균형 감각을 자랑합니다. 흙으로 빗었지만 어떤 충만한 힘이 항아리를 통해 밖으로 분출되는 듯한 균형감입니다.
그 위에 그림 문양도 탁월합니다. 사방을 둘러가며 복숭아나무를 그리고 두 줄기로 뻗어가는 가지 사이에는 다양한 포즈의 새를 그려 넣었습니다. 구연부의 장식은 물론 바로 아래의 청백 교대의 여의문 솜씨도 보통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더해서 어깨 위쪽에 선을 치고 그 속에 현주진준(玄酒盡樽)이란 글자를 하나씩 썼습니다. 술통 속의 술이 다 비었다는 말입니다만 자못 흥미로운 말이 현주(玄酒)입니다. 현자는 사전을 찾아보면 ‘검은 색 가운데 붉은 기를 띠고 있는 것을 현이라고 한다’고 돼 있습니다.
또 다른 뜻으로 신묘하다는 말이 있지만 술이 검다니 말이 됩니까. 그런데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을 보면 ‘현주는 물의 다른 이름’이라고 풀이돼 있습니다. 보충 설명으로 ‘현주는 물을 말한다. 그 색이 검어 현이라고 했고 고대에 술이 없었을 때 이를 가지고 (제사 지내면서) 술을 대신했기에 현주라고 일렀다’라고 했습니다. 즉 고대에 제사를 지내는 물이었습니다.
현주의 뜻이 이렇다면 ‘현주진준’은 이 항아리의 용도가 제사용 제주(祭酒)를 담는 데 쓰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보게 됩니다. 더욱이 복숭아나무는 고대부터 벽사(辟邪), 제액(除厄)에 널리 쓰였습니다.
이런 해석에 앞서 이 항아리는 탁월한 균형미와 뛰어난 필력이 보는 무엇보다 먼저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명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