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청화 괴석화조문 항아리
白磁靑花 怪石花鳥文 壺 높이36.5cm
2002년7월10일 서울옥션 제57회 미술품경매 No.88번, 출품취소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날아간 새가 아쉽다는 말은 옥션 하우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항아리는 구연부 일부가 깨져나가 수리를 했습니다. 요즘은 떨어져 나간 부분의 수리는 석고를 쓰는 게 대부분입니다. 없어진 부분을 석고로 만들어 붙이고 그 위에 바탕색과 같게 칠하는게 보통입니다. 한 세대 전의 수리 방법은 달랐는데 석고로 채워넣은 것은 같지만 색을 바르는 대신 은박을 입혔습니다. 이렇게 해놓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은이 산화돼 한결 운치 있게 보이게 됩니다.(물론 금박을 쓴 경우도 있습니다)
때운 흔적에 여러 곳에 금도 보이지만 이 항아리는 애호가라며 날아간 새처럼 아쉬움이 남을만한 항아리입니다. 이 항아리는 출품이 취소됐습니다. 출품취소란 경매를 하고자 도록에 사진까지 실리고 나서 어떤 사정에 의해 출품할 수 없게 된 경우를 가리킵니다. 사정은 여러 가지인데 위탁자가 심경을 변화를 일으켰을 수도 있고 심지어 물건 소유권에 관한 복잡한 문제가 튀어나올 때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항아리는 출품이 취소돼 경매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점이 특이해 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우선 문양입니다. 먼저 매화 고목에 새를 그린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렇다고 매조문(梅鳥文)이 메인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면에는 새가 일체 보이지 않습니다.
매조의 반대쪽에는 연꽃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사이의 다른 2면에는 각각 국화와 패랭이꽃입니다. 국화나 패랭이꽃은 모두 18세기 금사리 항아리의 추초문(秋草文)의 메인들입니다. 그런데 이 추초문이 매화 가지의 새와 연꽃과 나란히 그려진 것입니다.
또 이색적인 것이 있습니다. 위쪽의 수복강녕(壽福康寧)의 글자입니다. 수복강녕은 18세기 들어 초화문이나 화조문에 곁들어 자주 등장하지만 이처럼 예서로 쓴 경우는 드뭅니다. 단정한 해서가 대부분입니다. 예서는 일반적인 필기용 서체가 아닙니다. 그래서 조선후기가 되면 실용과는 거리가 멀어졌는데 그런 만큼 이 항아리에 예서체가 쓰였다는 것은 좀 특별한 T.P.O.용으로 제작됐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형태면에서도 18세기 후반 청화백자 항아리에 보이는 당당한 느낌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구연부에서 어깨까지의 선도 그렇지만 이후에도 볼륨을 그대로 유지한 채 아래쪽으로 유연하게 흐르는 모습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굽바닥에 이르기 직전에 살짝 안으로 말아 치면서 단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18세기 항아리에서는 거의 보기 드문 케이스입니다. 또 구연부 끝의 청화선과 초화문 아래의 선도 없습니다.
이런 여러 사항을 고려하면 이 항아리는 특정한 어느 시기에 잠깐만 제작되고 말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대는 백자색이나 청화의 발색으로 보아 금사리보다 앞서는 18세기 초반이라는 것이 전문가 이 선생의 지적입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