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청화 매조죽문 항아리
白磁靑花 梅鳥竹文 壺 높이38.5cm
2007년7월12일 서울옥션 제107회 미술품경매 No.164번, 유찰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라는 말이 있습니다. 독일어인데 영어권에서도 그냥 가져다 쓰는 말입니다. ‘시대정신’이란 말입니다. 어떤 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보이는 정신 자세나 태도를 가리킬 때 이를 씁니다.
18세기 영정조 시대는 흔히 조선 문화의 르네상스기라고 합니다. 다양한 방면의 문화가 마치 온갖 꽃이 한꺼번에 피어나듯 백화요란(百花擾亂)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화려한 문화를 보면 그의 밑바닥을 관통하는 어떤 시대정신이 궁금해지게 됩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를 시대적 자신감 내지는 독자성을 꼽습니다.
그림에서도 이는 확인이 됩니다. 금강산 그림으로 일가를 이룬 정선이나 요즘의 한국인들이 떠올리는 조선적인 정서를 붓으로 담아냈던 김홍도의 그림이 좋은 사례입니다.
당연히 도자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자기 속의 시대정신은 18세기 중에서도 경기도 일대를 옮겨 다니던 관요 제작소가 분원리로 고정된 직후에 더욱 분명합니다. 정양모 前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 시대에 보이는 시대정신과 같은 특징을 준수함과 간결함이라고 말합니다.
이 항아리를 보면 그와 같은 지적이 얼마나 통찰력 있는 지적인지를 절로 느끼게 됩니다. 꼭 바로 선 구연부, 딱 벌어진 넓은 어깨, 다부진 균형.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누구든지 ‘준수하다’ ‘잘 생겼다’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게 할 정도입니다. 거기에 희고 맑은 태토는 전체적으로 간결한 느낌으로 기분을 이끕니다.
그림도 볼만합니다. 매화 줄기도 그렇지만 쓱쓱 그려내 대나무 줄기와 댓잎의 필선 역시 조금도 망설이는 구석이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도 당연히 시대적 자신감이 반영돼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