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청화 괴석화조문 항아리
白磁靑花 怪石花鳥文 壺 높이36.5cm
2004년6월30일 서울옥션 제88회 미술품경매 No.92번, 5억3천만원 낙찰
다시 괴석문 항아리입니다. 이번에는 좌대석을 치우고 지면에 바로 세워진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이 괴석은 어딘가 치졸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괴석 뒤로 보이는 문양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가녀린 풀꽃이 아니라 당당한 나무입니다. 그것도 매화, 소나무 그리고 복숭아가 달려있는 복숭아나무입니다. 꽃과 열매가 함께 그려진 것은 그림인 이상 언제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복숭아는 좀 그렇지만 소나무나 매화는 조선시대 여인들보다는 단연 사대부들이 선호하던 것들입니다. 절개와 지조가 굳은 군자를 상징하는 돌과 사대부가 분신처럼 생각한 소나무와 매화의 문양이 하나 가득 그려져 있는 항아리라면 이제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순백의 달 항아리에 대해서는 무언가 귀중한 곡식이나 저장물을 담기 위한 용도였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말하자면 부엌세간에 가깝게 본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방의 선비가 벗하기에 꼭 어울리는 소나무에 매화 그리고 돌이 그려졌다면 부엌 세간으로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게 당연합니다.
어떤 도자기든 실용에서 출발하는 것은 모두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단계를 지나면 실용을 넘어 감상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물론 실용과 감상이 반반씩 섞인 것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엌 찬장이나 대청의 쌀뒤주 위에 이렇게 돌을 그리고 소나무와 매화 문양의 큼직하게 그려 넣은 도자기를 올려놓았을 것이라고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랑방일까요. 사랑방의 기물, 세간은 박물관 등에 실물을 재현해놓고 있어 그 모습이 익히 상상이 됩니다. 낮은 문갑에 사방탁자 그리고 벽에는 편지를 꽂아두는 고비가 있을 뿐입니다. 더 추가한다면 도포를 걸어두는 횃대 정도이겠지요. 여기도 썩 어울릴 것 같지 않아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항아리의 자리는 어디였을까요. 근래 소개되는 도자기 책을 펼쳐보아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참고될만한 답이 거의 없습니다. 전문가 이 선생은 항아리의 위아래에 보이는 여의두문에서 시작해 활달한 필치의 그림 등을 보아 필력이 있는 화수(畵手)가 동원됐다고 말합니다. 그 위에 태토의 발색이나 코발트 안료의 질 역시 모두 일급 이상의 재료를 엄선해 쓴 것이라고 합니다.
조선중기 종친부 연회도의 한 부분
솜씨와 재료가 이렇다면 이 항아리는 특별 용도로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선생은 권문세가에서 잔치와 같은 큰 행사를 위해 마련한 용기가 아니겠는가 라고 추측합니다. 과거 큰 잔치에 초대된 빈객들은 독상(獨床)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쪽에 술 항아리가 놓여져 여기서 시중드는 사람들이 들며나며 술잔을 손님상으로 나르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초청한 주인인 문아한 성격인 위에 연치가 되어 마련한 연회라면 당연히 소나무, 매화 장식에 더해 장수 상징의 복숭아가 제격일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이 항아리의 쓰임이 얼추 짐작이 됩니다. 그렇다면 잔치에 앞서 미리 분원에 부탁해 사조(私造)한 것이 됩니다. 그것이 아니면 종친부에 속한 어느 왕실 집안용으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분원 제작은 원칙 왕실과 국가에 소용되는 도자기를 만드는 곳입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