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청화 초화칠보문 수복강녕명 호
白磁靑花 草花七寶文 壽福康寧銘 壺 높이26.5cm
2015년5월31일 서울옥션 제15회 홍콩경매, 360만홍콩달러 낙찰
조선 후기의 도자기를 대표하는 것이 청화백자이다. 청화(靑畵)는 푸른 안료로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렸다는 말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청색으로 그려진 문양이 꽃처럼 화사하고 아름답다고 해서 꽃 화자(靑花)를 쓰기도 한다.
이런 청화 기법이 도자기에 개발된 것은 수천 년 도자기 역사에서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일어났다고 할 만큼 대사건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어느 도자기든 문양을 넣고 싶으면 새기고 파는 방법밖에 없었다. 간혹 이례적으로 붙이는 방법이 있긴 있었다. 도자기에 색을 넣는 것도 유약에 안료를 타 바르는 데 불과했다.
그런데 청화기법의 개발로 마치 그림을 그리듯 정교한 그림을 도자기 위에 그려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기법은 대개 원나라 말기인 1340년경에 개발됐다고 추정된다. 하지만 물론 고려 때는 전해지지 않았다.
조선에 들어서도 서역산 안료의 조달 문제로 인해 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쓰였다. 조선 초기, 중기의 청화백자가 귀하디귀한 대접을 받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청이 중국을 통일한 후 원료문제가 해결되면서 조선에 본격적인 청화백자의 시대가 열렸다. 사정은 이렇지만 18세기 중반이후에 만들어진 청화백자는 색과 문양면에서 최상급으로 손꼽힌다.
더욱이 이 항아리처럼 초화문에 팔보문 그리고 수복강녕(壽福康寧)의 글자까지 곁들여진 예는 손꼽을 정도로 희귀하다. 초화문은 항아리 네 면에 서로 다른 것을 그려 넣었는데 창포, 패랭이꽃, 난초 그리고 패랭이꽃과 난초 사이에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초화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초화문에 방해되지 않는 위치에 약간 예서(隸書) 맛이 있는 서체로 수복강녕이라고 써 있다.
이 수복강녕 글자 사이에 팔보문이 다시 더해졌는데 창포 위는 서각배(犀角杯)이고 패랭이꽃 위는 고대 악기의 일종인 석경(石磬) 그리고 이름 알 수 없는 초화 위에는 능경(菱鏡) 그리고 난초 위에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길상문이 그려져 있다.
백자청화 매난문 항아리 18세기 높이39.8cm 국립중앙박물관(이홍근 기증)
초화문에 원형 창을 그리고 그 안에 글자를 써넣은 청화 항아리는 몇 케이스가 알려져 있다. 그 중 문양 구성이 가장 가까워 보이는 것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백자청화 매난문 항아리(白磁靑畵梅蘭文壺)이다. 이 항아리에는 지면(地面) 선을 그리고 여러 종류의 초화 대신 난초만을 그렸다. 그리고 수복강녕 글자 사이에도 팔보문이 아니라 매화 가지를 그려 넣은 것이 다르다.
이들 청화백자 항아리는 18세기 중반의 어느 한 때에 아주 소량만 제작된 것이라고 이 선생은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요즘의 시장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희귀한 항아리임은 말할 것도 없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