粉靑沙器 鐵畵草魚文 甁 16세기 높이 33cm
2005년7월6일 서울옥션 제96회미술품경매 추정가 3천만~5천만원
전형적인 계룡산 분청병입니다. 동체가 두툼한 위에 흰 백토 분장을 배경으로 철사 안료로 그린 물고기 그림이 들어있습니다. 계룡산 분청이 계룡산 분청다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자신에 넘치는 대범함과 여유작작한 활달함입니다. 앞서의 병들이 동체 전면을 꽉 채워 거리낌 없는 자신감을 보였다면 여기는 자유분방함이 포인트가 됩니다.
물고기를 연꽃 사이에 배치한 것은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그런데 필치가 심상치 않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마구잡이입니다. 그림이란 초심자 눈에는 첫째도, 둘째도 ‘어느 정도 닮았느냐’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병 속의 물고기는 지상의 어느 물가에도 존재하지 않을 듯한 모습입니다.
머리는 커다랗게 길고 뾰족해 앞서의 쏘가리를 닮아 보입니다. 그런데 몸체로 가면서 이상해졌습니다. 뒤쪽(작은 사진) 물고기의 지느러미는 부채를 펼친 듯합니다. 등도 그렇고 배쪽도 모두 갈퀴처럼 과장되게 그렸습니다.
앞쪽 물고기는 형태 묘사가 더욱 심각해 보입니다. 배쪽 지느러미를 보면 ‘얘야 밥 먹어라’라는 소리라도 들었는지 그리다가 만 듯한 형상입니다. 더 가관인 것은 물고기의 동체 처리입니다. 앞서 소개한 쏘가리들은 동체에 점을 찍기도 하고 선을 쓱쓱 그려 비늘이라고 했습니다. 이들과 비교하면 붓을 잡은 사람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를 그렸는지, 벌인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입니다.
계룡산 분청은 활달함이 특징입니다만 그 끝 간 데에는 이처럼 격식 제로, 속박 제로의 문양이 등장합니다. 동양화에서는 계산되거나 의도된 필치나 시도를 경계합니다. 그런 것들은 그림을 업으로 삼는 사람, 즉 직업 그림쟁이들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인들이 붓을 들을 때에는 가식이나 꾸밈이 없는 평담(平淡)한 경지를 순수, 즉 천진(天眞)하다고 여겼습니다. 평담천진은 문인화가 미학의 지향점 같은 것입니다.
조선전기 분청사기는 결코 평민용이 아니었습니다. 궁에서도 썼고 반가(班家)에서도 사용했습니다. 평담천진을 신조로 삼고 있던 그들의 눈에는 이 정도까지 방심(放心)한 필치 역시 관용의 범위 속에 있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듯합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