粉靑沙器印花文甁 높이 31.8cm
2014년12월17일 서울옥션제134회 미술품경매 Lot No.280 6,800만원 낙찰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이 선생의 말에 따르면 다 같아 보이는 올오버 인화문일지라도 미묘하게 색감의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만들어진 지역의 태토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경상도 가마의 분청사기는 약간 잿빛에 가깝게 보인답니다. 반면 전라도나 충청도 지역은 황토 점토를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속살의 느낌이 붉어 보이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 고수들은 서울 인사동에 앉아 있으면서도 중간 상인들이 어느 지역을 훑고 왔는지는 환히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이 분청사기 병은 경상도지역에서 만든 것입니다. 실제로 경상도지역 분청에는 이처럼 글자를 새겨 넣은 것이 많이 보입니다. 글자는 대개 관서 이름입니다. 이들 글자는 접시에 새겨져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물론 이렇게 병의 몸체에 적힌 것도 드문드문 있습니다.
이 병에는 세 군데에 글자가 보입니다. 글자는 도자기 용어로 명(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3 글자 중 판독 가능한 것은 ‘府(부)’ 자 정도입니다. 다른 하나는 꺽쇠 두 개를 나란히 위로 포개놓은 것처럼만 보여 짐작이 쉽지 않습니다. 또 다른 하나도 애매모호합니다.
힌트가 있습니다. 일본 세카이도 문고(靜嘉堂文庫)에 있는 분청사기 인화 승렴문(繩簾文) 항아리입니다. 여기에는 '고령인수부(高靈仁寿府)'라는 명문이 백상감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세카이도문고 항아리의 명문과 비교해보면 애매모호하게 보이는 글자는 목숨 수의 약자 수(寿)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한 자는 인(仁)자로 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세카이도문고 항아리의 명문'고령인수부'는 세로쓰기(縱書)이지만 여기서는 '인수부'를 한 자씩 나눠 둥근 고리 안에 넣었습니다.
인수부는 세자전(世子殿)에 속한 관청으로 명종때까지 있었습니다. 현재 전하는 분청사기 중에 '의령(宜靈)인수부'라고 적힌 접시가 있습니다. 이것도 인화 승렴문입니다. 인(仁), 수(寿), 부(府)라고만 적힌 이 항아리가 의령에 속하는지 고령에 속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역시 격이 높은 고급입니다. 몸체는 보시다시피 안을 동그랗게 남겨두고 바깥은 네모지게 연속으로 판 도장을 계속해서 찍었습니다. 그런데 굽과 몸통 아래에도 별개의 인화문을 찍었습니다.
몸체 제일 아래쪽에는 작은 꽃잎처럼 보이는 돌기가 있는 둥근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연판문을 배치했습니다. 굽에 재차 돌기가 있는 둥근 도장을 찍었습니다. 앞서의 병처럼 밖으로 벌어진 구연부에도 상감 문양을 넣었습니다.
이 정도 치장이라면 상당한 공을 들인 것이고 격을 의식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선 전기에 경상도의 밀양, 의성, 경주, 부산, 군위, 예안 등지에 장흥고(長興庫)의 지방창고가 있었습니다. 장흥고는 오늘날 조달청에 해당합니다.
이들 지방 장흥고는 왕실은 물론 한양의 관청용 물자도 조달했습니다. 이 지방에서 나오는 분청사기에는 그를 말해주듯 ‘밀양 장흥고’ ‘군위 장흥고’라고 쓴 접시, 발 등, 병 등이 보입니다. 관서명 그릇이 격이 높은 이유는 여기서 찾아볼 수 있을 듯합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