粉靑沙器印花繩簾文甁 높이 30.8cm
2006년2월23일 서울옥션 제100회 미술품경매 Lot No.86 추정가 1억2천만-1억5천만원
뉴욕에서 김환기의 그림을 보고 서울에 온 한 미국 평론가는 경복궁의 돌을 보면서 무릎을 쳤다고 합니다. 김환기의 점화(點畵)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조화를 이룬, 이 경복궁의 돌에서 인스피레이션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덕수궁 담장이라면 몰라도 ‘경복궁의 돌이라니 무슨 돌을 가리키는지’ 조금 생뚱맞습니다. 여하튼 그의 점화의 출발점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런 논의를 앞에 두고 그가 조선자기의 애호가이자 컬렉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또 다른 생각이 듭니다. 그의 컬렉션에 ’혹시 이런 분청사기가 하나 들어있었다‘면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됩니다.
이 분청자기는 인화(印花) 기법을 썼습니다. 인화는 같은 문양을 연속적으로 반복하면서 도장처럼 새긴 것으로 찍은 것을 말합니다. 부분적으로는 상감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의 인화문은 국부적인데 그치지 않습니다. 올오버 페인팅처럼 전면적입니다. 빈틈없이 줄지어 찍힌 점이 발을 쳐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승렴문(繩簾文)이란 말도 생겨 났습니다.
그렇다고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여섯 군데에 변화가 있습니다. 하나씩 보면 우선 밖으로 벌어지는 주둥이에 방사상(放射狀)의 흰 상감으로 선을 넣었습니다. 이런 곳에 문양을 넣는 것은 사례가 극히 드믑니다.
그런 다음에 주둥이(注口)가 끝나고 목이 시작되는 부분도 그렇습니다. 우선 흰 상감 선을 아래위로 둘렀습니다. 그 안에 가락지 모양처럼 보이는 인화문을 연속시켰습니다. 이 문양 전체는 몸통이 끝나면서 안으로 접어 들어가는 곳과 굽에서 재차 반복됩니다.
이 정도 복잡성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성이 필요하지 아닐 수 없습니다. 40년 이상 도자기를 만져온 이 선생 역시 이 옥호춘(玉壺春)형 분청사기 병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체에 빈틈없이 문양을 넣는 것은 중국이 특기입니다. 그리고 18세기 이후 그를 전수받은 일본도 이런 수법을 잘 구사했습니다. 이 분청 병 역시 분류로 보면 ‘빈틈없이’라는 표현에 해당할 겁니다. 그렇지만 전체 분위기는 중국, 일본처럼 번다(煩多)하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차분하고 침착합니다. 수더분하달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이런 격조 높은 병은 어디서 제작됐는지가 궁금해집니다. 촘촘한 인화문 분청은 나오는 곳이 대개 남부지방입니다. 전라도, 경상도 가운데서도 해안 가까운 쪽입니다. 김환기 고향은 알다시피 신안군 안좌도입니다. 점화그림에서 분청사기 인화문 느낌이 연상된다는 것은 그 때문일까요?(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