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磁陰刻瓢形注子 높이 26.3cm
2011년3월10일 서울옥션 제119회경매 1억5천만원 낙찰
얼마 전 TV에서 접하기 힘든 증언 하나를 들었습니다. 한 새터민이 밝힌 탈북 에피소드입니다. 그는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에게 부탁을 하나 받았습니다. 중국 사람에게 도자기를 팔았는데 돈 받는데 따라가 말을 통역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친구와 함께 중국에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돈은 받지 못한 채 떠돌아다니며 고생한 끝에 결국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때가 90년대 초입니다.
이 새터민의 친구가 중국인에게 팔았다는 도자기는 말할 것도 없이 청자입니다. 그가 탈북할 시절, 청자는 대거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남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때 들어온 청자는 엄청났습니다. 큰 붐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많이 들어와 청자 가격이 폭락하는 원인이 됐습니다.
흔히 청자 수집에는 3번 정도의 큰 파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1930,40년대입니다. 일본인들이 무덤까지 파헤치면서 욕심 사납게 수집하자 전형필 선생 등 조선인 컬렉터들이 나선 시대입니다. 두 번째는 한국경제가 본격적으로 도약하던 70년대입니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나 호림의 윤장섭 회장 등 유명 컬렉터가 등장한 것이 이때입니다.
세 번째가 중국을 통해 북한의 청자가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온 90년대 전반기입니다. 새로 들어온 청자들은 당시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놀랄만한 들이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개성의 왕궁터 그리고 왕과 귀족 무덤이 조직적으로 파헤쳐졌다고 했습니다. 당시 많았을 때에는 북한의 중국관문인 단동에 백여 명 이상의 상인들이 진을 치고 있다고도 합니다. 그 결과 수요 공급의 법칙에 의해 청자 값이 폭락한 것입니다.
이 포도문 표주박형 주전자는 비록 뚜껑이 없으나 기형이 탁월하게 아름답습니다. 또 가마속에서 굽는 과정에서 불길이 제대로 닫지 않아 누런 요변(窯變)이 남아있지만 문양만은 일품입니다.
포도 당초(唐草)를 그리면서 포도는 쏙 빼고 넓은 잎과 덩굴만 그렸습니다. 거기에 선의 굵기 변화로 잎과 줄기의 입체감을 살렸습니다. 웬만한 감각의 주인이 아니고서는 발휘할 수 없는 기지이자 멋입니다.
하지만 이 주전자는 시대이라는 역사의 운명에 희생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70년대의 가격과 2010년의 가격에는 거의 10배 가까운 차이가 있습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