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높이 30cm
2010년9월16일 서울옥션 Autumn Space경매 추정가 1억5천만~2억원
제아무리 스무드하게 보이는 세상일일지라도 그 내막에는 종종 고통스러운 준비단계가 숨겨져 있는 일이 있습니다. 청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박물관 진열장 속의 명품이 탄생하기까지 디딤돌이 되었을 것 같은 청자를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청자 매병은 모란꽃 문양을 앞뒤로 큼직하게 새겼습니다. 꽃잎은 희다고 해서 백토로 상감을 했습니다. 반면 푸른 잎은 철분이 많이 들어간 자토(赭土)를 넣어 검은 색이 나게 했습니다. 흑상감입니다. 이는 꽃잎 윤곽부분에도 정교하게 구사됐습니다.
12세기 어느 시점에서의 청자제조 기술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여기까지라고 했지만 이것만 해도 대단한 진보입니다. 청자는 철분이 많이 든 흙으로 빗습니다. 이것을 가마 속에 넣고 구으면 흙에 든 철분의 성분이 변하면서 청색을 내는 것입니다.
그 옛날에는 흙속의 철분이나 불의 온도를 일률적으로 조절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구워낸 청자색은 녹색에서 하늘색까지 편차가 매우 컸습니다. 이후 경험이 축적되면서 어느 정도 균일한 푸른색을 낼 수 있게 됐지만 문양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겨우 한 것이 뾰족한 것을 가지고 홈을 파 유약이 몰리게 하거나 아예 잎사귀 같은 것을 갖다 붙여 문양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이 음양각 기법입니다만 중국은 여기까지였습니다.
고려는 한발 더 나아가 구우면 희고 검게 되는 흙을 넣어 청자에 푸른색 외의 제2, 3의 색 표현을 가능케 했습니다. 이 병의 모란꽃잎의 넓적한 부분은 일부 박락된 것처럼 보입니다. 백토를 균일하게 넣기가 쉽지 않아서입니다. 만일 그림처럼 쓱쓱 칠할 수만 있었다면 이런 실패는 없었을 것입니다.
청자상감 동채모란문 매병의 부분(12~13세기 34.5cm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346호)
그런데 청자 도공들은 이 해법도 찾아냈습니다. 청자 위에 진사(辰砂)를 바르면 된다는 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진사는 산화동(酸化銅)이란 광물입니다. 이는 불에 견디는 힘이 강해 1300도를 넘어서도 날아가지 않고 붉은 색을 냅니다.
보물 제346호 매병은 흑백상감에 진사 기법까지 쓴 것입니다. 모란꽃잎 끝에 붉은 기운이 몰린 곳에 이 진사를 발라 선홍색 꽃모습을 청자위에 재현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대단한 솜씨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보물 매병에 견주면 이 매병은 한참 수더분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백상감이 떨어져 나가는 시행착오와 고민이 없었다면 아마 이 화려한 보물의 탄생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제대로 해낸 도자기란 생각이 들게 됩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