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흑백상감 운학문 매병, 고려 12세기, 높이 34.7cm
2007년9월15일 제108회 서울옥션경매1부 추정가 7억~8억원
조선시대에 새를 가장 잘 그린 화가로는 단연 김홍도가 손꼽힙니다. 그가 온갖 새를 고루고루 잘 그렸습니다. 그런 솜씨는 다분히 뛰어난 관찰 덕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학이나 해오라기처럼 다리가 가늘고 여린 새들의 그림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애처로운 마음이 일게 할 정도로 탁월합니다.
상감청자의 문양 중에는 학이 구름과 곁들여진 이른바 운학문 청자가 많습니다. 이를 보면 개중에는 어느 한 때 전남 강진의 청자 가마에는 분명코 김홍도에 결코 뒤지지 않는 학 그림의 달인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솜씨와 마주치게 됩니다.
상감은 보통 흑백 상감이 짝으로 쓰이는 게 보통입니다. 굽고 나면 희게 보이는 것은 백토(白土)를 넣어서 그렇고 검은 쪽은 철분이 많이 든 자토(赭土)를 넣은 것입니다. 이 매병에서 학의 주둥이와 눈 그리고 긴 다리에 만 자토를 넣었습니다. 홈을 파고 남의 흙을 넣으면서 얇고 긴 다리 그리고 콕 찍은 눈의 특징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살렸습니다.
매병 속에 새겨진 학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하늘을 향해 막 날아오른 자세가 보이는가 하면 수평 비행중인 것도 있습니다. 이 학은 무언가 땅에 급한 볼 일이라도 있는지 방향을 틀어 하강하려는 듯이도 보입니다. 문양하면 판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정도라면 상당한 시간의 관찰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12세기 무렵 강진 청자가마 아래에는 아마 소나무 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가지 위에는 학이 무리 지어 이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의 도공은 잠시 쉬는 틈이 나면 고개를 들어 높은 하늘에서 흰 구름을 따라 빙빙 돌고 있는 학의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자상감 운학문매병의 부분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고려 12세기 후반, 높이 30.3cm 국립중앙박물관
이런 상상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소나무는 청자 가마의 주요 화목(火木), 즉 땔감이었습니다. 그리고 운학문은 문양의 나라라고 하는 중국의 도자기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개인소장 청자상감 운학문매병(12세기 높이 35.27cm)의 부분
이 매병이 구워진 시기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매병에도 상감으로 학과 구름이 새겨진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운치가 서로 다릅니다. 일본의 어느 도자 애호가는 아름다운 도자기는 셋이 합쳐져야 탄생한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삼분의 일은 도예가의 솜씨입니다. 두 번째 삼분의 일은 가마의 속 불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보는 사람의 안목이라는 것입니다.(*)